식용유, 밀에 이어 이번에는 닭고기입니다. 말레이시아가 다음달부터 닭고기 수출을 중단하기로 했습니다. 표면적인 이유는 말레이시아 닭 농장들의 가격 담합 의혹이 불거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전 세계로 확산된 식량보호주의의 영향이 없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말레이시아에서 닭고기를 수입해왔던 싱가포르, 태국과 일본, 홍콩 등 아시아 다수 국가들이 당장 타격을 받을 전망입니다.

23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말레이시아 정부는 다음달 1일부터 월 360만마리에 이르던 닭 수출을 중단하기로 했습니다.

이스마일 사브리 야콥 말레이시아 총리는 이같은 내용을 설명하며 닭고기 가격 담합 의혹을 조사하기 위해서라고 밝혔습니다. 말레이시아 국영 통신에 따르면 닭고기 업체들은 가격 담합을 위해 닭고기 공급을 줄여 가금류 공급 부족 사태를 초래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습니다. 이스마일 총리는 “만약 담합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법적인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든, 결과적으로는 말레이시아 내에서 닭고기 가격이 시장 개입을 의심할 만큼 급격하게 상승해 수출을 금지했다는 겁니다. 말레이시아의 2020년 기준 가금류 수출 규모는 1890만달러(약 239억원)로 세계 49위입니다. 그럼에도 자국의 닭고기 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해 한시적으로 정부가 수급을 조절하겠다는 거지요. 최근 인도네시아 정부가 한시적으로 팜유 수출을 막고, 인도가 밀 수출을 중단했던 ‘식량안보주의’ 조치와 결을 같이 합니다.



가금류를 수출하긴 하지만 말레이시아는 식량 안보 위기에서 자유로운 나라는 아닙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말레이시아는 전체 식량 수요의 60%가량을 수입합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해외 원자재 가격이 상승하면 직격탄을 받는 구조지요. 게다가 최근 미 중앙은행(Fed)의 기준금리 인상 기조는 금리 격차를 벌려 신흥국 통화가치를 떨어뜨릴 가능성이 큽니다. 식량 수입 가격이 더 높아진다는 의미입니다.

말레이시아 정부가 지난주 양배추, 우유 등 일부 제품들의 수입 허가제를 폐지한 것도 식량안보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서라는 분석입니다. 말레이시아 MIDF 아마나 투자은행 연구원들은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과 국내 공급망 붕괴, 자국 통화가치 하락 등으로 말레이시아의 식량 인플레이션이 몇 달간 계속될 것”이라는 보고서를 내기도 했습니다.

말레이시아의 닭고기 수출금지 타격은 아시아 국가들이 받을 전망입니다. 대표적인 나라가 싱가포르입니다. 싱가포르는 지난해 기준 전체 닭고기 수입의 34%를 말레이시아에서 수입했습니다. 싱가포르식품청은 이번 수출 금지 조치로 냉장 닭고기 수급에 제한이 있을 수 있다며 소비자들에게 냉동 닭고기나 다른 육류를 구매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싱가포르 대표 요리인 ‘치킨라이스’도 가격이 뛸 전망입니다.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셀레나 링 싱가포르 OCBC 은행의 재무연구 및 전략 책임자는 “닭고기 수출 금지가 일시적이라면 버틸 수 있다”면서 “그러나 다른 국가들도 인플레이션 우려와 식량 안보를 위해 보호주의 조치들을 시행한다면 모두가 손해를 볼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일본과 홍콩, 태국 등 다른 아시아 국가들도 예외는 아닙니다.

통계청 수출입무역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말레이시아에서 닭고기를 수입하는 국가는 아닙니다. 그러나 말레이시아가 다음달부터 닭고기 수출을 금지하면 글로벌 닭고기 수입 가격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합니다. 한국무역통계진흥원에 따르면 올 들어 월별 닭고기 수입가격지수는 전년 동기 대비 30~40%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노유정 기자 yjr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