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30년의 역설"... '디플레이션식 사고방식' 만연
미국, 유럽과는 확연히 다른 인플레이션 온도차
최근 일본 물가상승률이 7년여만에 최고치를 기록했지만, 일본에서는 인플레이션보다 디플레이션(지속적인 물가하락)을 걱정하는 기류가 강하다는 분석이 나왔다. 일본 경제가 '잃어버린 30년'이라고 불릴 정도로 과거 수십년간 경기침체에 익숙해져 버린 탓이란 설명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 유럽 등 주요 선진국들이 수십년 만에 최고치를 찍은 물가상승률을 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반면, 일본에서는 정반대의 온도차가 감지되고 있다"고 2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일본에서도 최근 물가상승세가 나타나고 있지만, 인플레이션에 대한 심리 자체가 다른 국가들과는 구조적으로 다르다는 지적이다.

지난달 일본의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1% 올랐다. 변동성이 큰 신선식품 등의 가격을 반영한 CPI도 2.5% 상승했다. 일본 중앙은행의 목표치(2%)를 넘겼다. 일본 물가가 2% 넘게 오른 것은 2015년 3월(2.2%) 이후 7년1개월 만이다. 최근 들어 물가상승률이 7~8%를 넘나드는 미국, 유럽 등에 비하면 여전히 낮은 편이지만, "30년 장기 디플레이션에 빠져 허우적대던 일본까지 세계적인 물가 상승의 영향권에 진입했다"는 분석이 쏟아졌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일본 경제에 만연한 무기력증과 소극적인 대응 때문이다. 도쿄 UBS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마사미치 아다치는 "일본의 디플레이션식 사고방식은 물가상승 압력이 다른 방향으로 가는 경향이 있음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일본에서는 수입물가 상승이 오히려 디플레이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이게 바로 일본에서 인플레이션이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을 상상하기 어려운 이유"라고 강조했다.

보통 미국, 유럽 등 다른 국가에서는 기업들이 원자재 가격 상승 비용을 소비자에게 전가한다. 반면 일본 기업들은 가격 인상으로 인한 소비자와 대중의 반발을 두려워해 쉽사리 소매 가격 인상에 나서지 못한다. 또 수십년 간 제자리인 임금에 익숙한 직원들도 임금 인상을 요구하려들지 않는다. 자신들의 임금 인상 요구가 또 다른 물가 상승으로 이어질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FT는 "일본 기업들로서는 수입 원자재 비용이 늘어도 소매가격을 함부로 인상할 수 없고, 결국 그들은 임금 비용을 줄이는 쪽으로 반응해 궁극적으로 인플레이션 압력이 아닌 디플레이션을 야기한다"고 분석했다.

이는 일본 중앙은행과 많은 경제학자들이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이라고 확신하고 완화적 통화정책을 고수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일본의 정책입안자들은 여전히 일본 경제의 기초적인 수요가 전반적으로 약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인한 수입물가 상승의 영향이 줄어들면 인플레이션도 금세 사라질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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