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서 8년9개월 만에 정권이 교체된다. 총선에서 앤서니 앨버니즈가 이끄는 중도좌파 성향의 노동당이 스콧 모리슨 현 총리가 이끄는 중도우파 성향의 자유·국민연합을 꺾었다.

22일 ABC방송 등에 따르면 앨버니즈 대표는 “호주 국민은 변화에 투표했다”며 “31대 호주 총리로 재임할 기회를 갖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전날 밤 노동당은 하원에서 72석을 차지했고, 자유·국민연합은 55석을 확보했다.

이탈리아계인 앨버니즈 대표는 호주 역사상 처음으로 비(非)앵글로-켈틱계 총리가 된다. 그는 “캠퍼다운의 공공주택에서 자란 장애연금을 받는 미혼모의 아들이 호주 총리로서 여러분 앞에 서는 것은 우리나라에 대해 많은 것을 보여준다”고 했다.

모리슨 총리도 총선 패배 선언을 했다. 그는 “야당 지도자인 앨버니즈 대표와 통화하면서 선거 승리를 축하했다”고 했다. 자신이 이끌어온 자유·국민연합 대표직 사임 의사도 내비쳤다.

외신들은 호주의 인플레이션 등이 이번 총선의 주요 쟁점으로 작용했다고 평가했다. 코로나19 대유행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으로 호주의 지난 1분기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기 대비 5.1% 상승했다. 부동산 가격도 빠르게 치솟았다. 이에 맞춰 노동당은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 인상, 제조업 활성화, 신규 주택 구매 시 보조 등의 공약을 제시했다.

기후 변화도 승부를 가른 쟁점 중 하나였다. 2019년 모리슨 총리는 석 달간 호주에서 산불이 이어질 당시 가족과 몰래 해외로 휴가를 떠나 여론의 비난을 받았다. 노동당은 2050년까지 온실가스 방출량을 ‘0’으로 만들겠다고 공약했다.

정권이 바뀌어도 미·중이 촉각을 세우고 있는 호주의 대중 정책은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앨버니즈 대표는 승리 연설 뒤 미국이 주도하는 태평양 지역의 대중국 동맹인 오커스방위동맹을 강력히 지지한다고 밝혔다. 그가 모리슨 정부의 외교 기조를 두고 “초강대국(중국)과의 전쟁 가능성을 높인다”고 비판한 만큼 지나치게 미국과 영국에 밀착하는 모습은 보여주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선거에 승리한 앨버니즈 대표는 일본 도쿄에서 24일 열리는 ‘쿼드(미국·일본·호주·인도 안보협의체)’ 정상회의에 참석한다. 그는 “쿼드 정상회의는 호주의 최우선 과제”라고 했다.

박주연 기자 grumpy_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