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러시아산 원유를 사들이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미국은 당장은 대(對)러시아 제재 위반이 아니라고 하지만 향후 세컨더리 보이콧(제3자 제재)을 적용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서방 제재로 값싸진 러시아산 원유를 헐값에 매입하려는 중국과 인도를 겨냥한 조치다.

블룸버그통신은 “중국이 원유 공급 물량을 추가로 매입하기 위해 러시아 측과 논의하고 있다”고 1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에 대해 미 백악관은 로이터통신에 “일단 제재 위반은 아니다”고 밝혔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정세 불안 등으로 국제 유가가 급등한 반면 러시아산 우랄 원유 가격은 급락했다. 미국과 유럽 주도의 러시아 제재에 정면으로 위배될 수 있어 국제 원유시장에서 러시아산 원유 수요가 급격히 얼어붙었다. 미국과 영국이 가장 먼저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금지했고 유럽연합(EU)도 조치를 검토 중이다. 이로 인해 우랄 원유는 브렌트유에 비해 배럴당 30~40달러 정도 할인된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중국과 인도 등 러시아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일부 국가의 경우 헐값에 원유를 쟁여둘 기회가 생겼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중국 민영 정유사들이 서방 국가들이 모르도록 기존의 항로를 피해 러시아산 원유를 대량으로 사들이고 있다”고도 보도했다. 원자재 데이터업체 케이플러는 중국 측의 러시아산 원유 구매량이 최근 들어 하루평균 8만6000배럴 증가한 것으로 추산했다.

중국 정부는 공식적으로 원유 재고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다만 케이플러에 따르면 중국의 상업용 원유와 전략비축유 저장 총량은 10억 배럴 정도다. 현재 원유 재고는 9억2610만 배럴가량으로 추정된다. 제인 시에 케이플러 원유애널리스트는 “중국으로선 매우 매력적인 조건에 재고를 보충할 좋은 기회인 셈”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중국의 헐값 기름 매입이 지속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미국이 세컨더리 보이콧 카드를 꺼내들 수 있어서다. 세컨더리 보이콧은 제재 대상과 거래하는 제3자에게도 위반의 책임을 함께 묻는 것이다. 제니퍼 그랜홈 미국 에너지부 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러시아산 원유 구입과 관련해 미국의 세컨더리 보이콧이 이뤄질지 묻는 질문에 “논의에서 배제된 게 아니라는 점은 확실하다”고 말했다.

세컨더리 보이콧까지 시행되면 이미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한 국제 유가 상승세를 더 부추길 가능성도 있다. 그랜홈 장관은 “미국 정부가 유가 상승을 자극할 수도 있다는 판단 때문에 신중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가격 상승 압박이 커진 것은 확실하다”며 “연료비 때문에 우리 국민이 고통받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편 미국 정부가 러시아산 원유 금수 조치를 발표한 이후 미 정유업체들이 대체재로 중남미산 원유를 선택한 것으로 나타났다. 4월 기준으로 하루평균 130만 배럴의 원유와 연료유를 중남미에서 들여왔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