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는 명백한 실패이며 “통상정책의 흑역사”라는 지적이 일본 내부에서 나왔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20일 간판 칼럼을 통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정부의 동북아 정책에서 한·일 관계 개선은 우선순위가 높은 과제”라며 “여러 쟁점 가운데 수출 규제가 실패했다는 점을 분명히 해 둘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은 2019년 7월부터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품목 3종의 한국 수출을 규제하고 있다. 표면적인 이유는 “한국의 수출 관리에 부적절한 사안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베 신조 당시 총리는 “강제 징용공 소송에 아무런 조치를 내놓지 않는 한국 정부에 대한 사실상의 보복 조치”라는 인식을 나타냈다고 이 신문은 설명했다.

“500억엔(약 5004억원) 수준인 일본의 소재 수출을 규제해 15조엔 규모인 한국의 반도체 산업 전체에 타격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평가와 달리 한국이 받은 타격은 그리 크지 않았다고도 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 역시 지난 9일 퇴임 연설에서 “일본의 부당한 수출 규제로 일어난 위기를 극복했다”고 말했다.

이 신문은 “수출 규제의 효과가 없었다는 점보다 한국에 도의적인 우위성을 제공한 것을 부끄러워해야 한다”며 “일본 통상정책의 흑역사”라고 비판했다. 경제적 수단으로 전략적 목표를 이루는 ‘이코노믹 스테이트 크래프트(경제적 외교술)’는 서방의 러시아 제재가 기대한 효과를 내지 못하는 것처럼 간단하지 않다고도 했다. 복잡한 경제활동을 단순한 정치적 의도로 움직이려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경제적 수단으로 다른 나라에 압력을 가한다’는 발상 자체가 원래 일본에는 없던 개념이라는 지적도 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나 주요 7개국(G7)의 제재에 발을 맞추기는 하지만, 단일 국가에 경제적 외교술을 행사한 적은 없다는 것이다.

이 칼럼 마무리에는 “자유무역 체제야말로 일본의 핵심적인 이익”이라며 “경제안보에 있어서도 ‘전수방위(공격받았을 때만 반격하는 일본의 국방 원칙)’를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