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국부펀드가 애플 등 글로벌 기업들의 '임원 고액 연봉'에 연달아 제동을 걸고 있다. 특히 최근 같은 주가 폭락장에서는 임원들이 거액의 성과급을 받아가는 게 주주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노르웨이 국부펀드의 니콜라이 탕엔 최고경영자(CEO)는 12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기업 실적이 어중간해서 임원들의 고액 연봉을 정당화할 수 없다거나, 연봉 체계를 단기적 성과에만 연동시킨다거나, 산정 방식이 불투명한 경우 등을 대상으로 앞으로도 계속 반대표를 던질 것"이라고 말했다. 노르웨이 국부펀드는 운용하는 자산 규모가 1조2000억달러(약 1540조원)에 달하는 세계 최대 국부펀드다.

탕엔은 "전 세계가 엄청난 인플레이션 환경에 놓여 있는 상황에서 평타의 실적을 내는 데 그친 기업들이 고액 임금 패키지를 내놓고 있는 건 말도 안된다"고 비판했다. 또 "이는 '기업 탐욕'이라고 표현해도 될 수준"이라면서 "주주가치를 훼손하는 행태"라고 꼬집었다. 노르웨이 국부펀드는 전 세계 주요 상장사들의 지분을 1.5% 가량씩 소유하고 있다.

노르웨이 국부펀드는 최근 인텔의 연례주주총회에서 임원 보수 안건에 반대표를 던졌다. 3월에는 애플의 팀 쿡 CEO(사진) 등의 급여에 대해서도 제동을 걸었다. IBM에 대해서는 "실적이 실망스러운데도 지속적으로 높은 임원 보수를 책정하고 있다"며 반대표를 행사했다. 제너럴일렉트릭은 임금 체계의 불투명성을 이유로, 또 할리데이비슨은 경쟁사 대비 지나치게 높다는 점을 이유로 각각 임원 보수 안건을 부결시켰다.

최근 미국과 유럽에서는 대기업 임원들의 고액 연봉이 논란이 되고 있다. 기업 거버넌스 차원에서 이들의 연봉 체계를 투명화하고 주가와 연동시키라는 투자자들의 요구가 빗발치면서다. 데이터 제공업체 ISS 코퍼레이트솔루션즈에 따르면 미국 S&P 500 지수에 편입된 기업 CEO들의 평균 급여가 2020년 1320만달러에서 지난해 1440만달러로 급증했다. 역대 최대치다. 그만큼 주주들의 반발도 커지고 있다. 컨설팅 기업 액센추어의 경우 임원 보수 안건에 대한 주주 동의율이 2020년엔 90%였는데, 작년엔 53%로 가까스로 주총을 통과됐다.

노르웨이 국부펀드가 무조건적으로 고액 연봉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노르웨이 국부펀드의 컴플라이언스 책임자는 "임원 급여가 실제로 장기적인 가치 창출과 얼마나 일치하고 있는가 등 많은 측면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기금은 JP모간과 아마존 등 일부 기업들의 장기적인 임원 보수 정책에 대해서는 찬성표를 던졌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