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경제도 미국편" 선언…美·中 양자택일 내몰린 기업
일본 정부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경제안보법을 확정했다. 외교와 국방뿐 아니라 경제 분야에서도 미국의 편에 설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일본 기업들은 핵심 동맹국인 미국과 최대 교역국인 중국 사이에서 양자택일을 요구받게 됐다. 미·중 생산체계를 분리하는 블록화 전략으로 대응하는 움직임이 포착된다. 12일 일본 미디어들에 따르면 일본 참의원(상원)은 전날 본회의를 열어 경제안전보장추진법을 가결했다. 일본 정부는 2023년부터 경제안보법을 단계적으로 시행할 계획이다.

일본도 ‘경제안보법’ 도입

일본의 경제안보법은 △공급망 강화 △핵심 인프라 안전 확보 △첨단기술 연구개발 지원 △특허 비공개화 등 네 가지 축으로 구성됐다. 전반적으로 중국을 견제하려는 성격이 강한 법률이란 분석이다. 미국과 영국 독일 프랑스는 이미 같은 제도를 도입했고, 일본이 뒤늦게 보조를 맞추는 모양새다. 미국은 민주주의 동맹국들에 중국을 견제하는 경제안보법 제정을 요청했다.

중국 의존도가 높은 경제 구조를 가진 일본으로서는 고민스러운 결정이었다. 중국은 2020년 일본 수출입 총액의 23.9%를 차지하는 최대 교역국이다. 2위 미국(14.7%)과 3위 한국(5.6%)을 합친 것보다 비중이 크다. 일본의 시가총액 100대 기업 가운데 41%는 중국 매출이 10%를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日 "경제도 미국편" 선언…美·中 양자택일 내몰린 기업
경제안보법을 통과시킴으로써 일본은 경제 분야에서도 서방 쪽에 설 것을 확실히 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미·중 긴장이 경제 분야로 확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국 의존도를 낮추고 공급망을 재편하는 것은 일본으로서도 중요한 과제다. 이미 일본 대표 기업의 실적에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전날 도요타자동차는 2021년 영업이익이 36% 늘어난 2조9956억엔(약 29조7424억원)으로 일본 제조업 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그런데도 도쿄증시에서 도요타 주가는 4.4% 급락했다. 지난해 실적보다 올해 영업이익이 부품 공급 차질 등의 영향으로 20% 줄 것이라는 회사 전망에 투자자들이 더 민감하게 반응했다는 분석이다.

닌텐도는 반도체 공급 부족의 여파로 2021년 가정용 게임기 닌텐도스위치 판매량이 20% 줄었다고 10일 밝혔다. 소니도 반도체 부족으로 지난해 콘솔형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5 판매량이 1150만 대에 그쳤다고 발표했다. 1480만 대였던 당초 목표보다 20% 부진했다.

미국과 중국에 각각 생산기지 만들어

2010년 중국이 영토분쟁을 빌미로 희토류 수출을 금지한 이후 일본은 중국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노력해왔다. 경제산업성에 따르면 일본 기업의 중국 현지법인 종업원 수는 2015년 162만 명에서 2019년 130만 명으로 감소했다. 미·중 무역마찰이 본격화한 2020~2021년 일본 기업의 중국 기업 인수합병(M&A)은 56% 급감했다.

경제안보법 도입으로 일본 기업들은 미국과 중국 가운데 양자택일을 요구받게 됐다. 미국이 반도체 등 자국산 핵심 부품의 중국 수출을 금지하는 한편 중국 제품 수입도 규제하고 있어서다.

발빠른 일본 기업들은 벌써부터 샌드위치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전략을 마련했다. 핵심 전자부품인 적층세라믹커패시터(MLCC) 세계 1위 무라타제작소는 최근 “세계 경제의 미·중 양극화에 대응하는 생산체계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무라타는 재료부터 생산설비 구축, 제조까지 전 과정을 자체적으로 해결하는 일관생산 사업모델을 갖추고 있다. 이 같은 생산체계를 중국에 하나 더 만들어 미국의 수출입 규제에 대응한다는 구상이다. 무라타는 매출의 58%를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중국 의존도가 15%인 일본 최대 공조회사 다이킨공업도 제품 생산체계를 미국 등 서방 국가와 중국의 2개로 이원화할 계획이다. 반도체 제조장비 부품업체인 펠로테크홀딩스는 중국 현지법인 등 자회사 4개를 상하이와 선전거래소에 상장한다. 일본 본사는 미국과 유럽 시장을, 중국 상장 자회사는 중국 시장을 담당하는 블록화 경영을 위해서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