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권면제 침해' 주장 되풀이…"이탈리아, 10년전 ICJ 결정 안 따라"
독일, ICJ에 이탈리아 제소…"나치 피해배상 재판, 국제법 위반"
독일이 이탈리아 사법부가 자국을 상대로 한 나치 정권 피해자의 손해배상소송을 받아주고 있다며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이탈리아를 제소했다.

국제법상 한 국가의 법원이 다른 주권국가를 상대로 재판할 수 없는데도 이탈리아가 이를 어겼다는 것이다.

29일(현지시간) ICJ는 보도자료를 통해 이날 독일이 국제법상 자국에 부여된 '주권면제' 권한을 이탈리아가 침해했다며 제소 절차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국가면제'로도 불리는 주권면제란 주권국가가 다른 나라의 재판관할권에서 면제된다는 원칙으로, 국제적으로 통용된다.

독일은 이번 소장에서 2012년 이미 ICJ가 주권면제를 인정해 이탈리아 법원이 자국을 재판할 수 없다고 판결한 사실을 언급했다.

당시 양국의 법적 다툼은 나치 정권 아래 강제 노역에 끌려간 이탈리아인 루이지 페리니가 1998년 자국 법원에 독일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데서부터 시작했다.

그는 1, 2심에서 패소했지만 2004년 대법원에선 승소했다.

이탈리아 대법원은 '강행규범'(누구나 상식적으로 지켜야 한다고 보는 보편적 원칙)을 위반한 국가에는 주권면제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정당한 포로 대우가 아닌 강제 노역은 전쟁 범죄로, 이에 대한 책임이 있는 국가가 주권면제를 통해 면책되어선 안 된다는 논리였다.

이 판결 이후 자국을 향한 소송이 늘자 독일은 이탈리아를 ICJ에 제소했고, 2012년 ICJ가 12 대 3의 의견으로 독일의 손을 들어줬다.

이탈리아 대법원이 주권면제 원칙을 어겼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엔 이탈리아 헌법재판소가 2014년 이를 또 뒤집고 전쟁범죄 피해자들이 외국을 상대로 개별 소송을 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이번 소장에서 독일은 "2012년의 판결에도 이탈리아 법원은 줄곧 독일을 상대로 제기되는 많은 소송을 받아들이고 있으며 이는 주권면제 원칙을 위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2014년 헌재 판결도 함께 거론하며 "이 판결 이후 최소 25건의 소송이 이탈리아 법원에 제기됐다"면서 이 가운데 최소 15건의 경우 소송을 (각하하지 않고) 받아줘서 판결까지 내렸다"고 지적했다.

독일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피해자에 대한 배상 문제는 전후 양국 간 청산 조약으로 이미 해결됐다는 입장을 줄곧 고수하고 있다.

ICJ는 2차대전 이후 유엔 회원국 간 분쟁을 취급하기 위해 설립된 기구다.

ICJ의 판결은 법적 구속력이 있지만, 해당 판결을 집행하도록 할 실질적 수단은 없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