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세계 각국의 식량보호주의를 ‘죄수의 딜레마’에 빗댔다. 식량 수출을 유지하는 것이 모두에게 이익이 되지만, 유일한 수출 국가로 남게 되면 내수 공급이 부족해질 것이라고 걱정해 수출 통제에 나선다는 설명이다. 미국 투자전문매체 시킹알파는 “식량보호주의가 유럽은 물론이고 다른 글로벌 시장까지 뒤덮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소규모 생산국도 "반출금지"…'죄수의 딜레마'로 치닫는 식량봉쇄령
○늘어나는 식량 수출 통제
소규모 생산국도 "반출금지"…'죄수의 딜레마'로 치닫는 식량봉쇄령
세계 각국은 각종 위기 상황에서 식량 수출을 통제해왔다. 코로나19 여파가 심각했던 2020년 상반기 일부 국가가 공급망 붕괴를 우려해 일시적으로 쌀, 밀 등의 수출을 중단했다. FT는 “팬데믹 초기 식량 수출 통제 움직임에 공급 부족 우려가 제기됐지만 당시 공급망은 생각보다 잘 버텼다”고 했다. 그러나 코로나가 끝나가는 상황에서 터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식량 수출을 중단하는 나라가 줄을 잇고 있다.

팜유는 물론 팜유 원유까지 전격적으로 수출을 금지한 인도네시아는 세계 1위 팜유 수출국이다. 연간 밀 수출 규모가 세계 10위권에 드는 카자흐스탄은 최근 밀 수출량에 대해 임시 할당제를 도입했다. 지난달 중순엔 아르헨티나가 대두유(콩기름) 등 대두 관련 식품의 신규 수출을 막으려 했다. 아르헨티나는 브라질, 미국에 이어 세계 3위 대두 수출국이다. 하지만 국내외 비판 여론이 잇따르자 아르헨티나는 수출 금지 대신 수출세를 31%에서 33%로 높였다. 국외로 반출되는 대두의 양을 줄이겠다는 의도다.

최근에는 세르비아 북마케도니아 헝가리 불가리아 몰도바 등 소규모 생산국들까지 밀, 옥수수 등의 수출 제한에 동참했다. 대표적 식량 수입국인 이집트까지 “식량 재반출이 우려된다”며 3개월간 밀 옥수수 식용유 수출을 금지하겠다고 나섰다. 데이비드 맬패스 세계은행 총재는 “국가들 간 보복 움직임까지 있어 식량 수출 통제는 앞으로 급격하게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최고가 찍은 식량 가격 더 오를 것”
각국 정부가 식량 수출 제한 조치를 취하는 것은 물가 안정을 위해서다. 물가를 잡으려면 국내에 우선 식량을 공급해야 한다. 하지만 이 같은 움직임은 오히려 가격을 폭등시키고 있다.

미 시카고상품거래소에서 옥수수 가격은 지난 2월 러시아 전쟁을 기점으로 부셸(27.2㎏)당 8달러 선을 뚫었다. 옥수수 8달러대는 2012년 이후 처음이다. 밀은 부셸당 11달러 돌파를 목전에 두고 있다. 2008년 식량위기 당시 가격(부셸당 9달러가량)을 훌쩍 뛰어넘었다. 대두유값은 사상 최고인 파운드(약 0.45㎏)당 87.8센트까지 치솟았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3월 세계식량가격지수가 전월보다 12.6% 상승한 159.3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1990년 관련 집계를 시작한 이후 역대 최고치다. 러시아 전쟁으로 질소비료의 핵심 원료인 천연가스 가격이 치솟아 곡물값은 상당 기간 고공행진을 이어갈 전망이다.

맬패스 총재는 “각국 정부가 국내 가격 상승 압박을 해소하기 위해 수출 금지를 선택하면 국제 가격을 더 끌어올리는 ‘승수효과’를 발생시킨다”고 지적했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부 장관은 이달 중순 의회연설에서 “각국 정부가 연달아 수출통제에 나서면 물가 상승세를 더욱 자극할 수 있다”며 자제를 호소했다.

식량 가격의 추가 상승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FAO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여파로 식품 및 사료 가격이 8~22%가량 더 오를 것으로 봤다. 조지프 글라우버 국제식량정책연구소(IFPR) 수석연구원은 “수출 금지를 채택하는 나라들이 얻을 수 있는 것은 각국의 수출 통제를 확산시키는 부작용뿐”이라고 비판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