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로 어렵다면 걸어서라도…"…러, 형식적 주민투표 후 자치공화국 세울 듯
[우크라 침공] '강제합병 위기' 남부 헤르손, 필사의 탈출 행렬
러시아군에 장악된 끝에 강제합병될 위기에 처한 우크라이나 남부 도시 헤르손에서 주민들의 목숨을 건 탈출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고 미 CNN방송이 2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CNN은 차량으로 탈출하려는 시도가 러시아군에 막히자 주민들은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길이 닦이지 않은 들판을 지나가면서까지 헤르손을 필사적으로 떠나려 한다고 전했다.

아버지와 함께 헤르손에서 빠져나와 약 150㎞ 떨어진 크리비리흐에 도착한 한 남성은 맨몸으로 강을 건너 도시를 탈출했다고 말했다.

이 남성은 인터뷰에 응하면서도 "러시아군이 우리를 알아본다면 헤르손에 남은 가족들을 다 죽일 것"이라고 두려워했다.

러시아가 2014년 강제합병한 크림반도에서 본토로 나아가는 통로가 되는 헤르손은 개전 초기부터 러시아의 집중 공격을 받았으며, 인근 지역 상당 부분이 이미 점령됐다.

그러던 중 지난 25일에는 러시아군이 헤르손 시 당국을 완전히 장악하는 데까지 성공했다고 우크라이나 측은 밝혔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다음 수순으로 주민투표를 실시해 이 지역을 '헤르손 인민공화국'이라는 친러시아 자치 세력을 설립하려고 한다고 보고 있다.

신변 안전이 보장되지도, 자유로운 의사 표현이 불가능한 환경에서 이 같은 '엉터리' 투표를 통해 마치 주민의 뜻에 따라 자치 공화국을 세운 후 강제합병을 추진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합병을 위한 요식행위 격의 주민투표가 임박했다는 소식이 퍼지자 헤르손이 곧 러시아의 영토가 될 것이라는 두려움에 탈출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크리비리흐 시 당국은 지금까지 우크라이나 군이 헤르손 쪽을 향해 펼쳐진 160㎞ 전선에서 7천명 가량의 주민 탈출을 도왔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에는 차량이 없어 자전거, 손수레 등을 이용해서 빠져나온 주민들도 있다고 당국은 밝혔다.

이전에는 차량으로 헤르손 인근의 점령지역을 벗어나도록 허용했던 러시아군 검문소가 26일부터 이를 금지하자, 차를 버려두고 떠나는 인파가 늘기 시작했다고 주민들은 전했다.

신변 안전을 위해 익명을 요구한 여성은 주민 투표 끝에 러시아가 도시를 합법적으로 합병하게 되면 아들이 징집될 우려가 있어 딸과 함께 탈출했다고 말했다.

이 여성은 "헤르손은 완전히 점령됐고 음식도 돈도 없다.

(합병)투표가 끝나면 러시아는 18살 난 내 아들을 데려가 '대포받이'로 쓸 것"이라면서 "러시아군의 총격 을 피해 겨우 탈출에 성공했다"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우크라 침공] '강제합병 위기' 남부 헤르손, 필사의 탈출 행렬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