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가 코로나19 대유행으로부터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채 경기침체 속 물가 상승(스태그플레이션)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라는 돌발 변수를 맞닥뜨리면서다.

"세계 경제 스태그플레이션 위험 커졌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우크라이나 사태는 코로나19 여파로부터 빠져나오고 있는 세계 경제의 회복세를 둔화시킬 수 있다”며 “성장 둔화와 인플레이션이라는 두 가지 위험이 올해 세계 경제를 강타할 것”이라고 1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전쟁 장기화로 생산성이 추락하고 물가가 급등하면서 세계 경제가 발목을 잡힐 수 있다는 관측이다.

FT는 미국 싱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와 함께 개발한 글로벌경제회복추적지수를 근거로 들었다. 지난해 6월 27.77에 달했던 이 지수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전인 올 1월 이미 10.78로 60%가량 하락했다. 이 지수는 세계의 실물 경제와 금융 시장, 신뢰도 지표 등을 과거 평균과 비교해 회복력 수준을 측정한다. 에스와르 프라사드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은 “급등하는 물가와 제한된 정책 수단 등으로 올해 세계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며 “정책 입안자들이 난제를 떠안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세계 경제의 3대 핵심 축인 미국·유럽·중국이 경기 위기에 직면했다는 진단이 나왔다. 미국에선 노동 시장이 코로나19 사태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고 소비력도 뒷받침되고 있지만 물가 급등세가 40년 만에 최고 수준에 달했다. 프라사드 연구원은 “미국 중앙은행(Fed)이 물가를 잡기 위해 강하게 긴축 조치를 취하면 내년 미국 경제가 침체에 빠질 수 있다”고 했다.

중국의 경우 코로나19 확산을 저지하기 위한 당국의 엄격한 봉쇄 조치가 경제 성장의 걸림돌로 지적됐다. 유럽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한복판에 선 탓에 불확실성이 높아지며 시장의 신뢰를 잃었다는 진단이다. 프라사드 연구원은 “세계 경제를 성장 궤도에 올려놓기 위해선 코로나19 사태로 나타난 혼란을 정리하고 생산성 향상을 위해 인프라 지출을 늘리는 등 공동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한편 글로벌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는 2년 내 미국의 경기 침체 가능성을 35%로 예상했다. 얀 하치우스 골드만삭스 수석이코노미스트는 “Fed가 경기 침체 없이 물가를 안정시키는 연착륙을 달성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내다봤다. Fed가 임금 상승률을 인플레이션 목표인 2%로 맞추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그는 “Fed의 통화 긴축 시기에 반드시 경착륙이 이뤄지는 건 아니다”고 덧붙였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에서 긴축 사이클은 14회였는데, 이 중 2년 안에 침체가 발생한 경우는 11회였다.

허세민 기자 se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