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후 처음으로 로마 콜로세움서 '십자가의 길' 예식
우크라이나, 러시아 신자 십자가 함께 들어
[월드&포토] "주여, 평화를 허하소서"
예수의 수난과 죽음을 되새기는 '성금요일'(15일)을 맞아 이탈리아 로마의 상징인 콜로세움이 다시 빛의 물결로 일렁였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날 밤 콜로세움 앞에서 약 1만 명의 신자·순례자가 지켜보는 가운데 '십자가의 길' 예식을 거행했습니다.

이 예식은 예수가 사형 선고를 받고 십자가를 진 채 골고타 언덕에 이르기까지 14가지의 중요한 사건을 되짚어보며 예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자는 취지입니다.

성금요일을 상징하는,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로마가톨릭 '신심 행사'로도 꼽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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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 선정된 일반 신자가 예식에 참여해 십자가를 지고 이동하면서 사건별로 묵상과 함께 기도를 올리게 됩니다.

이 예식 장소가 콜로세움으로 되돌아온 것은 2019년 이래 3년 만입니다.

2020∼2021년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약식으로 진행됐습니다.

올해 예식에는 다양한 삶의 배경을 가진 가족이 초대됐습니다.

장애아나 입양아를 둔 가족, 병마와 싸우는 가족, 자녀를 잃은 부부, 이민자 가족 등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지킨 평범한 가족들이 함께 십자가를 짊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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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하이라이트는 가장 엄숙하고 경건한 열세번째 사건(13처), 즉 예수의 시신이 십자가에서 내려져 성모 마리아에게 건네지는 일을 묵상하는 지점이었습니다.

여기서는 서로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출신 여성이 힘을 모아 십자가를 받쳐 들었습니다.

우크라이나 여성은 로마의 한 가톨릭계 치료센터에서 일하는 간호사이고, 러시아 여성은 같은 재단 대학의 간호학과 학생이라고 합니다.

AP 통신은 "두 여성이 십자가를 지고 이동하면서 한참을 침울한 눈으로 서로를 바라봤다"고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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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전쟁의 비극과 평화의 염원이 동시에 깃든 인상적인 장면으로 남았습니다.

양국 여성의 예식 참여는 전 세계에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려는 교황의 뜻에 따른 것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준비 과정에서 우여곡절도 있었습니다.

우크라이나 당국은 이러한 예식 일정이 공개되자 외교적 경로를 통해 교황청에 강한 우려의 입장을 전달했습니다.

일방적인 가해자와 피해자가 같은 선상에서 평화와 화해를 얘기할 수 없다는 취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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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길 예식을 통해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겠다는 교황의 의지가 굳건해 예식은 계획대로 진행됐지만, 두 여성이 사전에 준비한 기도문 속 '화해'의 의미는 축소되거나 지워졌다고 합니다.

우크라이나 측을 위한 교황청의 배려로 풀이됩니다.

교황은 예식을 마무리하며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님의 뜻에 따라 원수가 서로 악수하고 용서하기를. 미움이 있으면 화목이 쇠하기에 서로를 겨눈 무기를 손에서 내려놓기를…."
[월드&포토] "주여, 평화를 허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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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