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해군의 흑해선단을 이끌던 순양함이 침몰한 것으로 13일(현지시간) 확인됐다. 침몰 원인을 두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입장이 갈리고 있다. 러시아는 단순한 화재사고로 규정했고 우크라이나는 자신들이 미사일로 격추시켰다는 주장이다. 러시아의 흑해 장악력이 떨어져 전황이 달라질 거란 전망이 나온다.

막심 마르첸코 우크라이나 오데사주 주지사는 이날 텔레그램을 통해 “우크라이나군이 넵튠 대함 미사일을 발사해 러시아 순양함에 큰 피해를 준 것을 확인했다”며 “우크라이나에서 새로 도입한 넵튠 미사일 2발에 피격된 것”이라고 밝혔다.

마르첸코 주지사는 “침몰한 순양함이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 즈미니섬(뱀섬) 공격에 나섰던 바로 그 군함이다”라고 주장했다. 넵튠 미사일은 구소련 KH-35 크루즈미사일을 토대로 우크라이나가 자체 개발해 지난해 군에 실전 배치됐다. 모스크바함에 넵튠 미사일을 발사한 것이 사실이라면 전쟁에서 사용된 첫 사례가 된다.

러시아의 입장은 달랐다. 피격된 게 아니라 항구로 인양되는 중에 악천후를 만나 침몰했다는 것. 러시아 국방부는 14일 성명에서 “모스크바 순양함에서 악천후로 인한 화재가 발생했으며 이 화재로 탄약고가 폭발, 심각한 손상이 발생했다”며 “모스크바호의 승조원 500여명은 모두 구조된 상태고 화재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 전문가들의 분석은 달랐다. 미 국방부 관계자는 워싱턴포스트(WP)와의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 남부 해안 중심 항구인 오데사에서 120㎞ 떨어진 지점에서 모스크바호가 침몰했다”며 “공습으로 보이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무기에 격침됐는 지는 불분명하다”고 해석했다.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연구센터의 마크 칸시안 수석고문도 “사고보다는 대함미사일에 피격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러시아 해군이 이번 격침으로 인해 큰 타격을 입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모스크바호는 어뢰와 근접 미사일 방어체제 뿐 아니라 대함-대공 미사일을 갖추고 있다. 1983년 구소련 해군에서 취역한 뒤 2000년 ‘모스크바함’으로 개명하며 러시아 흑해 함대의 자부심으로 불려왔다. 배수량 1만2500t, 길이 186m, 폭 21m의 크기에 승조원 500명이 탑승할 수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모스크바호는 흑해선단의 나머지 함대를 제어하고 장거리 방공망 시스템을 운용했다. 쉽게 대체할 수 없는 전력이라는 설명이다. 영국의 왕립연합서비스연구소(RUSI)의 해양전력 연구원인 시다스 카우샬은 “모스크바호에는 러시아 해군이 보유한 함선 중 유일하게 장거리 대공망이 갖춰져 있다”라며 “흑해선단의 후방에서 방공망을 가동해서 지휘·통제를 했던 함선이 사라졌다”고 설명했다.

알레시오 파탈라노 킹스칼리지런던대 교수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미 해군이 항공모함을 잃은 것에 비견될 정도다”라며 “군함은 떠다니는 국가 영토다. 군함을 잃는 것은 군사력 손실뿐 아니라 정치적·상징적 메시지가 크다. 기함을 잃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다”고 말했다. 기함은 함대의 군함 가운데 지휘관이 타고 있는 배를 일컫는다.

우크라이나가 전세를 바꿀 계기가 될 거란 분석도 나온다. 러시아 해군이 흑해에서 주도권을 잃게 돼서다. 개전 이후 러시아 해군은 우크라이나 남해안을 봉쇄했다. 상륙작전은 감행하거나 미사일로 도시를 폭격했다. 우크라이나가 보유한 대함 미사일 역량이 입증되면서 러시아군 봉쇄가 느슨해졌다. 해안가에 떨어진 곳으로 재배치 된 것으로 알려졌다. 뉴욕타임즈는 조만간 흑해에 인접한 우크라이나 항구에 상업용 선박이 드나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