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침공에 對러시아 외교 꼬인 日…2천억원 투입 경협 손절
아베가 푸틴 27번 만나 공들였는데…쿠릴분쟁 해결 물건너가
일본은 이른바 '쿠릴 4개 섬'(일본명 북방영토) 영유권 문제 등 러시아와의 현안을 풀기 위해 장기간 공을 들였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그간 노력이 허사가 되는 양상이다.

일본이 러시아 제재에 동참한 것에 반발한 러시아가 21일(현지시간) 일본과의 평화조약 교섭 중단을 선언함에 따라 쿠릴 섬의 영유권 분쟁의 해결은 더욱 어려워졌다.

또한 일본에 러시아라는 새로운 안보 불안 요소가 부상할 것으로 보인다.

◇ 아베, 러일 관계 개선해 '평화조약·영유권 해결' 추구
러시아와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해 협상의 지렛대로 삼는 전략은 최장기 재임 기록을 세운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주도했다.

그는 총리 재직 중인 2016년 '러시아 경제 분야 협력 담당상'을 신설해 러시아와의 경제 협력에 속도를 냈으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친분 쌓기에도 몰두했다.

아베가 푸틴 27번 만나 공들였는데…쿠릴분쟁 해결 물건너가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아베는 2019년 9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방문해 푸틴 대통령과 27번째 정상회담을 마친 후 "블라디미르, 자네와 나는 같은 미래를 보고 있다", "양국 관계에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고 말할 정도였다.

2014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병합했을 때도 미국과 유럽은 강한 제재를 결정했으나 아베 정권은 비자(사증) 협의 중단 등 "러시아에 실질적인 해를 미치지 않는 제재"(외무성 간부)를 하는 등 러시아를 배려했다.

◇ 우크라 침공으로 틀어진 계획…일본도 러시아 제재 동참
하지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고 민간인 시설을 폭격하는 등 용인할 수 없는 군사적 행동에 나서면서 러시아와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해 평화교섭을 체결하고 쿠릴 섬 영유권 문제를 해결한다는 일본의 구상은 지속되기 어려워졌다.

러시아와의 관계를 고려해 과거에는 적극적 대응을 꺼리던 일본도 이번에는 러시아 제재에 상당히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동맹 미국의 요구에 적극적으로 화답하는 행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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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응해 푸틴 대통령이나 러시아연방중앙은행 등 러시아 주요 인사와 금융기관, 단체 등을 자산 동결 대상으로 지정했다.

러시아는 일본을 비우호국 명단에 넣었고 일본과 러시아 사이의 최대 현안이 평화조약 협상을 중단한다고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러시아는 또 "러시아 남쿠릴열도와 일본 사이의 무비자 방문에 관한 1991년 협정과 이전 남쿠릴열도 거주 일본인들의 고향 방문 절차 간소화에 관한 1999년 협정에 근거한 일본인들의 (해당 지역) 무비자 여행을 중단시키기로 결정했다"고도 밝혔다.

아울러 남쿠릴열도 내 공동 경제활동에 관한 일본과의 대화에서 탈퇴한다고 선언했다.

양국이 기존 노선을 지속할 수 없다는 징후는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최근 발언에서 엿보였다.

그는 이달 17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쿠릴 4개 섬을 러시아가 실효 지배하고 있는 것에 대해 자민당 의원의 질의를 받고서 "법적인 근거가 없는 점거이며, 불법 점거됐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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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총리가 국회에서 답변하면서 쿠릴 4개 섬에 관해 '불법 점거'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2009년 아소 다로 당시 총리 이후 13년 만이라서 이목을 끌었다.

일본 정부는 러시아의 협상 중단 선언에 대해 "이번 사태는 전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기인해 발생한 것이며 이를 일러(러일) 관계에 전가하려는 러시아의 이번 대응은 극히 부당하며 결코 수용할 수 없다"(하야시 요시마사 외무상)고 논평하는 등 강하게 반발했다.

◇ 일본 언론 "북방영토 해결 멀어질 것"…푸틴 '절친' 아베는 침묵
양국 관계는 이미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

요미우리신문은 러시아의 협상 중단 선언에 관해 "북방영토 문제를 포함한 러일 관계 개선의 길은 멀어졌다"고 진단했으며 마이니치신문은 "평화조약 교섭은 백지가 되고 북방영토 문제 해결의 길은 멀어질 것 같다"고 분석했다.

그간 일본 정부의 노선이 합리적이었는지에 관한 의문이 제기될 가능성도 엿보인다.

도쿄신문은 일본 정부가 2016∼2021회계연도에 러시아와의 경제 협력을 위해 265억엔(약 2천700억원)을 예산에 계상했고 이 가운데 200억엔(약 2천억원) 정도를 지출했다고 관계자로부터 얻은 정보를 토대로 보도했다.

아베가 푸틴 27번 만나 공들였는데…쿠릴분쟁 해결 물건너가
이 신문은 재임 중 푸틴 대통령과 27번이나 정상회담을 했던 아베가 22일 "시간이 없다"며 기자들의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면서 "푸틴 대통령과의 신뢰 관계를 토대로 평화조약 체결을 목표로 했던 아베 전 총리가 침묵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 러시아, 일본에 안보 위협으로 부상할 가능성
관계가 틀어지면서 러시아가 일본에 안보 위협으로 더욱 부각할 가능성도 있다.

일본은 러일 전쟁과 2차 대전 때 전쟁 상대국이었던 러시아를 이후에도 경계해 왔다.

냉전 시대에는 소련의 침공에 대비해 홋카이도에서 자위대를 동원한 대규모 훈련을 하기도 했다.

작년에 방위성이 발간한 방위백서는 러시아의 핵·미사일 전력과 관련해 "우리나라의 안전보장 환경에 크게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므로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기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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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위성이 최근 발표한 자료를 보면 자위대 전투기는 작년 4월부터 올해 2월까지 950차례 긴급발진했는데, 러시아 군용기를 견제하기 위한 출동이 246회로 중국 군용기 대응(688회)에 이어 두 번째로 많았다.

최근 일본 주변에서 러시아의 군사 활동도 활발해지고 있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러시아 정보수집함이 20일 쓰시마(對馬) 인근을 왕래하는 것이 방위성에 포착됐으며 이달 2일에는 러시아 소속으로 추정되는 헬기가 홋카이도 네무로 반도 인근에서 일본 영공을 침범하기도 했다.

◇ 쿠릴 섬 영유권 분쟁이란
이른바 쿠릴 4개 섬은 일본 홋카이도와 러시아 캄차카 반도 사이에 펼쳐진 쿠릴 열도 중 쿠나시르, 이투루프, 하보마이 군도, 시코탄 등 가장 남쪽에 있는 섬들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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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섬은 현재 러시아가 실효 지배하고 있는데 일본 정부는 이 지역의 영유권 분쟁을 '북방영토 문제'라고 부르고 있다.

소련은 1945년 8월 일본이 태평양 전쟁에서 항복한 직후 쿠릴 4개 섬을 점령했고 다음 해 이를 자국 영토로 편입했다.

일본은 1855년 일본과 러시아 사이에 체결된 러일통호조약(시모다조약) 이후 쿠릴 4개 섬이 외국의 영토가 된 적은 없으며 러시아의 실효 지배는 불법 점거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러시아는 이 지역이 2차 대전의 결과 획득한 러시아 영토이며 일본이 근거 없는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고 맞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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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약의 해석 문제가 있다.

일본이 1951년 9월 연합국과 체결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는 '일본은 쿠릴 열도 및 1905년 9월 포츠머스 조약의 결과 주권을 획득한 사할린 일부 및 이와 근접한 섬들의 모든 권리를 포기한다'는 내용이 있다.

포츠머스 조약은 일본과 러시아가 러일전쟁을 종결하기 위해 체결한 것인데 여기에는 '북위 50도 이남의 사할린을 쪼개서 일본에 양도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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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릴 4개 섬은 모두 북위 50도보다 아래에 위치하며 이 조약은 러일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이 지역에 대한 지배권을 확보하도록 하는 조치인 셈이다.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승리해 쿠릴 4개 섬을 지배했으나 패전 후 샌프란시스코 조약에 따라 이를 소련에 반환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하지만 일본은 이런 해석에 동의하지 않는다.

샌프란시스코 조약의 영문판은 쿠릴 열도를 'Kurile Islands'로 표현하고 있고 일본어판은 이를 '지시마(千島)열도'라고 기재하고 있는데 일본 정부는 여기에 북방영토가 포함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 일본 정부는 애초 북방영토는 지시마 열도에 포함되지 않으며 소련이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서명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조약에 따른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1956년 일본과 당시 소련이 수교하며 서명·발효한 외교문서인 '일소 공동선언'은 평화조약 체결 후 소련이 쿠릴 4개 섬 중 하보마이 군도와 시코탄을 일본에 넘긴다는 내용이 기재돼 있다.

하지만 나머지 2개 섬에 관한 언급은 없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