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임산부 가리지 않고 희생…"러, 민간인 의도적 공격" 의혹
전체 인구 4분의 1인 1천만명 피란살이…국외로도 349만명 탈출
[우크라 침공 한달] 2차 대전 이후 유럽 최악 인도적 위기
우크라이나는 전쟁 한 달 만에 생지옥이 됐다.

러시아군의 무차별 폭격에 민간인 사망자 수가 급증하고 있다.

집계마다 다르지만 사망자 규모는 최대 수천 명에 이른다.

부상자 수 증가세는 더 가파르다.

러시아군의 공격이 집중된 요충지 남부 항구도시 마리우폴의 상황은 그중에서도 가장 심각하다.

산부인과 병원·학교·극장에 무차별 폭격이 쏟아졌다.

수도·전기·난방이 끊기고 식수·식량도 고갈됐다.

이곳에 갇힌 민간인은 최소한의 인권마저 위협받고 있다.

약 350만 명이 우크라이나를 떠나 폴란드·루마니아 등 인접국으로 피란했다.

유럽에서 발생한 난민 사태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규모다.

[우크라 침공 한달] 2차 대전 이후 유럽 최악 인도적 위기
◇ 캐리어 끌던 평범한 가족 박격포에 사망…사망자 최대 수천 명
지난달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한 이후 민간인 희생이 하루도 예외 없이 발생했다.

개전 직후 한때 러시아는 민간 시설을 공격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으나 거짓이었다.

전쟁 초기부터 병원, 아파트 등 민간 시설에 대한 폭격으로 사망자가 쏟아져나왔다는 서방 언론, 인권감시단체의 고발이 이어졌다.

침공 닷새째, 우크라이나 제2 도시 하르키우(하리코프)의 민간인 지역을 폭격하면서 러시아군의 민간인 대상 폭격은 더 노골적으로 변했다.

수도 키이우(키예프) 조기 장악에 실패한 러시아군이 민간인 피해를 고의로 양산, 항복을 유도하려 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이런 배경에서 집속탄, 열압력탄(진공폭탄), 백린탄 등 금지된 무기를 쏟아붓고, 정밀 유도무기를 보유하고도 표적을 무차별 폭격하는 '멍텅구리 폭탄'을 주로 사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우크라 침공 한달] 2차 대전 이후 유럽 최악 인도적 위기
키이우 인근 이르핀에서 여행용 가방을 끌고 대피하던 엄마와 아이 둘이 대로에서 박격포 파편에 맞아 숨진 사례는 상징적이다.

현장에서 이들의 사망을 목격한 뉴욕타임스(NYT)는 희생자들의 처참한 시신 사진을 신문 1면에 올리는 파격으로 전세계에 강력한 경종을 울렸다.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는 지난 20일 기준 우크라이나의 민간인 사망자 수가 925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어린이 사망자 75명을 포함한 수치다.

부상자는 1천496명에 달했다.

OHCHR은 사상자 대부분이 공습공격, 미사일공격, 대포, 다연장포 등 포격에 의해 발생했다면서 집계되지 않은 사망자가 있어 실제로는 더 많을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우크라이나 당국은 이미 지난 16일 기준 마리우폴, 하르키우에서만 약 3천 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올렉시 레스니코프 우크라이나 국방부장관은 어린이 사망자 수가 150명에 이른다고 주장했다.

[우크라 침공 한달] 2차 대전 이후 유럽 최악 인도적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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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이·임신부 가리지 않는 피해…민간인 대피시설까지 집중포격
러시아군에 포위된 마리우폴의 상황은 그중에서도 가장 심각하다.

지난달 27일에는 6살 소녀가 러시아군의 포격 파편에 맞아 숨졌다.

잠옷이 피로 물든 채였다.

이달 2일에는 16살 소년이 갑작스러운 폭발에 두 다리를 잃었다.

이달 9일에는 이곳의 산부인과 병원이 폭격을 받았다.

만삭의 임신부가 이 병원에서 들것에 실려 나오는 사진에 전 세계가 경악했다.

출산이 임박한 창백한 얼굴의 이 임신부는 피투성이가 된 아랫배를 안간힘을 쓰며 감쌌다.

이 임신부는 들것에 실려 다른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약 1천 명이 대피한 극장, 400명이 대피한 예술학교도 러시아군 포격의 표적이 됐다.

운행 중이던 버스는 물론이고 손님이 줄을 선 빵집도 러시아군의 무차별 폭격을 피하지 못했다.

[우크라 침공 한달] 2차 대전 이후 유럽 최악 인도적 위기
음식이 동났고, 전기와 물도 거의 끊겼다.

눈을 녹여 가며 가까스로 식수를 조달해야 했다.

눈이 모두 마른 뒤에는 그마저도 구할 곳이 사라졌다.

이런 모든 참상을 주도한 러시아군은 오히려 "마리우폴에 끔찍한 인도적 재앙이 발생하고 있다"며 항복을 요구했다.

우크라이나는 '항복을 받아내려면 먼저 파괴하라'며 거절하고 결사 항전을 다짐하고 있다.

러시아는 3주째 마리우폴 포위한 뒤 '고사' 작전을 진행 중이다.

인구가 40만 명에 달했던 마리우폴은 동부 친러시아 반군과 크림반도를 연결하는 요충지로 러시아군의 집중 공격에 시달리고 있다.

[우크라 침공 한달] 2차 대전 이후 유럽 최악 인도적 위기
◇ 피란민 최대 800만명…"인도주의적 위기는 전략"
우크라이나에서 피란을 떠난 사람은 전체 인구의 4분의 1인 1천만 명에 달한다.

유엔 난민기구(UNHCR)와 유엔 산하 국제이주기구(IOM)에 따르면 국외로 피란을 떠난 사람은 21일 기준 349만 명, 우크라이나 국내에서 난민이 된 사람은 약 648만 명이다.

2015년 시리아 난민 사태(난민 규모 약 130만 명)의 규모를 배 이상 뛰어넘었다.

영국 더타임스는 최근 "난민 1천200만 명이 발생했던 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규모"라고 보도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의 난민 규모가 800만 명에 이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다행히도 인접국들은 우크라이나 피란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폴란드가 우크라이나 피란민 208만 명을 받아들였고, 루마니아(54만명), 몰도바(37만명), 헝가리(31만명), 슬로바키아(25만명) 등이 뒤를 이었다.

러시아(23만명), 벨라루스(3천765명) 국경을 넘은 난민도 있었다.

러시아가 이런 민간인의 비참한 현실을 고의로 만들어내고 있다는 분석도 일각에서 나온다.

에밀 호카옘 국제전략문제연구소 연구원은 NYT에 "인도주의적 위기를 만들어내는 것은 전쟁의 한 전략이지 부작용이 아니다"라며 "(이 전략으로) 상대방에게 부담을 안길 수 있다"고 진단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