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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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9일 일본의 최신 유행을 선도하는 도쿄 하라주쿠에 ‘세계에서 인스타그램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가게’를 콘셉트로 내건 회전초밥집이 등장했다. 일본 2위 회전초밥 프랜차이즈인 구라스시가 하라주쿠점을 연 것이다. 코로나19 장기화로 극심한 불황을 겪고 있는 일본 외식업계는 구라스시의 확장을 주목했다.

임대료가 싸고 주차 공간이 넓은 교외에 가족 단위 고객을 타깃으로 하는 기존 회전초밥 체인의 공식을 깨고 Z세대(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 출생)가 주 고객인 매장을 도심 한복판에 열었기 때문이다.
‘한 접시 100엔’으로 日 제패
지난달 말 찾은 구라스시 하라주쿠점은 초밥집이라기보다 하라주쿠의 명물인 크레페 가게를 더 닮았다. 하라주쿠점에선 업계 유일의 ‘크레페 스시’를 판매한다. 로봇이 자동으로 반죽을 굽고 까만색과 핑크색 티셔츠 유니폼을 입은 점원이 고객 앞에서 직접 초밥을 만드는 크레페 포장마차를 도입했다. 고사다 히로유키 구라스시 매니저는 “일본의 전통문화와 도쿄 팝컬처의 융합이 인테리어 콘셉트”라고 설명했다.
日 외식업 죽쑤는데…혼자 웃는 '100엔 회전초밥'
고사 위기를 맞고 있는 일본 외식업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성장하는 영역이 프랜차이즈 회전초밥이다. 업계 1위 스시로의 매출은 2020년 2049억엔(약 2조1474억원), 2021년 2408억엔으로 2년 연속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올해는 3000억엔을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2020년 65억엔이었던 순이익도 두 배 이상 늘었다.

2위 구라스시의 매출도 2020년 1358억엔, 2021년 1476억엔으로 최대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2020년 적자였지만 올해는 29억엔의 순이익을 올릴 전망이다. 하마스시와 갓파스시까지 포함해 4대 프랜차이츠 초밥 체인 모두 코로나19 이전보다 주가가 크게 올랐다.

기업형 회전초밥은 갓파스시가 1979년 나가노현에서 처음 시작했다. ‘한 접시에 모두 100엔’이란 마케팅으로 일본 전역에서 인기를 끌었다. 일본의 고급 음식문화를 대표하는 초밥 한 접시 가격이 100엔이라는 점은 엄청난 파격이었다.

아직도 4대 프랜차이즈 회전초밥에서 참치 연어 계란말이 등과 같은 인기 메뉴는 100엔을 유지하고 있다. 임대료가 비싼 도심 점포도 120엔으로 20엔 더 비쌀 뿐이다.

일본에서 100엔인 초밥이 해외에서는 훨씬 비싸게 팔린다. 한국에선 160엔, 미국 360엔, 중국에선 267엔 정도다. 해외 수익성이 더 높다 보니 회전초밥 프랜차이즈들은 해외 진출에 적극적이다.

구라스시는 미국 25곳, 대만 29곳 등 54곳의 해외 점포를 운영하고 있다. 미국과 대만 현지법인 모두 현지 증시에 별도로 상장했다. 스시로와 갓파스시는 한국에도 체인점을 두고 있다.
코로나19 시대에 더 인기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시대에 회전초밥집이 더 잘되는 이유를 “초밥은 초밥집에서만 먹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초밥이 일본의 대표 음식이지만 일본인도 집에서 만들어 먹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따로 앉아서 한 접시씩 나오는 요리를 바로 먹는 방식이 코로나19 시대 ‘사회적 거리두기’에도 적합했다는 평가다.

업체들은 차별화에도 힘쓰고 있다. 스시로는 집적회로(IC) 칩을 초밥 접시에 심어 데이터를 분석한다. 구라스시는 우동 라면 닭튀김 디저트 등 초밥 이외 메뉴를 다양하게 갖추고 있다. 어린 자녀가 있는 가족 단위 고객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다. ‘요괴워치’ ‘귀멸의 칼날’ 등 인기 애니메이션과 협업 상품을 내놓기도 했다. 3위 하마스시는 평일엔 초밥 한 접시 가격을 90엔까지 내리기도 한다.

코로나19 대응 전략도 한층 진화했다. 가게에 들어와 계산하고 나갈 때까지 종업원과 한 번도 마주치지 않는 게 가능하다. 구라스시는 휴대폰으로 주문할 수 있는 스마트 주문 시스템을 도입했다. 앱을 내려받을 필요 없이 QR코드만 찍으면 된다. 4명이 방문한다면 각각 4대의 스마트폰으로 주문할 수 있다. 불특정 다수가 사용하는 매장용 터치 패널을 꺼리는 고객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고객이 다 먹은 접시를 집어넣으면 흐르는 물로 주방까지 옮기는 ‘워터 슬라이스’ 방식도 개발했다. 테이블마다 얼마나 먹었는지까지 자동으로 계산된다. 직원이 일일이 접시를 세어 가격을 계산하고 접시를 치우는 시간과 수고도 덜어줬다. 고객은 종업원과 접촉을 피할 수 있고 테이블에 접시를 수북이 쌓아두지 않아도 된다. 셀프 계산 시스템은 기본이다.
이자카야가 초밥 시장 진출
초밥의 인기에 다른 외식업체도 군침을 흘리고 있다. 일본 최대 이자카야 프랜차이즈 중 한 곳인 와타미는 작년 12월 9일 도쿄 긴시초에 1호점을 내고 초밥 시장 진출을 선언했다. 와타미는 초밥 전문점을 5년 안에 100호 점까지 늘릴 계획이다.

와타나베 미키 와타미 사장은 “회전초밥 시장 규모가 7000억엔을 넘는다”며 “회전초밥 고객의 3분의 1만 와타미로 끌어와도 2000억엔 이상의 매출을 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와타미가 초밥 시장을 넘보는 이유가 있다. 이자카야는 코로나19의 가장 큰 타격을 받은 외식업이기 때문이다.

도쿄상공리서치에 따르면 14대 프랜차이즈 이자카야의 점포 수는 코로나19 사태 직전인 2019년 12월 7200개에서 2021년 12월 5844개로 18.9% 줄었다. 휴업 명령, 영업시간 규제 등으로 생존이 어려워지자 이자카야 체인들은 닭꼬치 전문점, 야키니쿠(일본식 고기구이) 전문점, 햄버거 프랜차이즈 등으로 변신을 시도했다.

와타미는 다양한 해산물을 전문적으로 취급해온 이자카야 운영 노하우를 접목하면 초밥 전문점으로 변신이 가능하다는 계산을 했다. 이자카야의 객단가는 2500엔인 반면 초밥집은 3000엔이라는 점도 와타미가 초밥 시장에 눈독을 들이는 이유다.

회전초밥 프랜차이즈들은 이자카야 운영 노하우만으로 ‘한 접시 100엔’의 가격 경쟁력을 갖추기는 어렵다고 지적한다. 와타미도 처음에는 회전초밥집을 검토했지만 컨베이어 벨트 대신 종업원이 직접 초밥을 나르는 일반 초밥 전문점으로 바꿨다. 살아남기 위해 초밥 시장에 뛰어든 이자카야 프랜차이즈와 기존 4대 회전초밥 전문점 사이의 치열한 승부가 시작됐다는 관측이 나온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