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YT "매트리스 촘촘히 깔려…불안한 적막감"
대피 시민 "스트레스로 잠 거의 못 자…아이들 밤마다 울어"
[우크라 침공] 키이우 지하철역 피란살이 1만5천명 불면의 나날
"참고 견딜 수밖에요.

그래도 바깥보다는 안전하니까요"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키예프)의 도로호지치 지하철역에서 아홉살 울리야나는 울먹였다.

러시아 침공 이튿날인 25일(현지시간) 엄마 손을 잡고 집을 나온 지 엿새째다.

고양이도 데리고 왔다.

2일(현지시간) 울리야나와 같이 러시아군의 공습과 포격에 이 지하철 역사로 대피한 시민은 어림잡아 200여명.
역사 내 통로와 승강장에는 매트리스와 텐트가 촘촘했고 곳곳에는 급하게 싼 옷 가방과 비닐봉지에 싸고 온 음식이 눈에 띄었다.

좁은 매트리스에는 3∼4명이 함께 몸을 부대끼며 잠을 청했다.

이 난리통에 감기라도 걸리면 방법이 없었다.

발이 밖으로 삐져나가 춥지 않도록 담요로 싸맸다.

역사 이곳저곳을 다니며 음식과 생필품을 전하는 자원봉사자가 그저 감사할 뿐이다.

이들의 발길만 분주할 뿐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어 역사는 적막감이 흘렀다.

러시아 침공 7일째인 이날 공습·폭격의 공포에 지하철역에서 어려운 피란 생활을 이어가는 키이우 시민들의 모습을 뉴욕타임스(NYT)가 전했다.

키이우 시민들은 대부분 아파트에서 몸을 숨기고 있다.

그러나 상당수는 불편한 생활을 감수하며 지하철역으로 피신했다.

지하철역이 그나마 미사일, 전투기 폭격에 안전하기 때문이다.

지하철역으로 피신한 시민은 대부분 여성과 아이, 노약자다.

남성은 대부분 총동원령에 응해 징집됐기 때문이다.

비탈리 클리치코 키이우 시장도 1만5천명에 달하는 시민이 시내 지하철 역사로 들어가 지내고 있으며 대부분이 여성과 아동이라고 밝혔다.

수의사인 올하 코발추크(45) 씨와 딸 옥사나(18)도 역사에서 만났다.

이들은 어렵게 잡은 역사 안 나무 의자에서 번갈아 잠을 자며 피란살이를 하고 있다.

[우크라 침공] 키이우 지하철역 피란살이 1만5천명 불면의 나날
"이곳은 아이들에게 정말 안 좋은 환경이에요.

내가 수의사이긴 하지만 이 공간이 얼마나 (아이들에게) 악영향을 주는지는 알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스트레스로 밤마다 웁니다.

"
코발추크 씨는 자신도 매일 스트레스 탓에 거의 잠을 자지 못한다면서 침공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비난했다.

"정말 증오합니다.

그가 우리에게 가져온 고통이 얼마나 큰지 보세요"
한 여성은 끊임없이 스마트폰의 화면을 손가락으로 끌어내리며 침공 관련 뉴스를 확인하고 있었다.

옆에는 지금의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들이 회색 바닥 위로 장난감 차를 굴리고 있었다.

우크라이나군의 저항으로 예상보다 러시아군의 진격이 더딘 상황이지만 러시아군이 앞으로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터라 지하철 역사의 공기는 암울하다.

지난달 28일 키이우 도심에서 약 27㎞ 떨어진 안토노프 공항에서 북쪽으로 64㎞ 길이의 러시아군 행렬이 인공위성에 포착됐는데 조만간 시가전에 돌입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한편으로는 러시아군이 이런 전면전 대신 도시를 포위해서 보급로를 끊고 포격·공습·폭격 등 원거리서 화력을 퍼붓는 '포위전'에 돌입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었다.

NYT는 "어느 쪽이든, 이미 고된 생활 중인 키이우의 지하철에서 지내는 사람들은 더 힘들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길어지는 대피 생활에도 역사 내 의료 등 필수 서비스를 유지하려는 노력이 보인다는 점이다.

키이우의 한 산부인과 병원은 이 역사 한구석에서 출산이 임박한 임산부를 돌보고 있다.

병원 측에 따르면 벌써 5명의 아기가 이 '지하철역 병원'에서 태어났다.

[우크라 침공] 키이우 지하철역 피란살이 1만5천명 불면의 나날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