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의 물가가 통계 작성 이후 최고치로 치솟았다. 우크라이나 전쟁 탓에 에너지 가격이 급상승하면서 물가 부담이 더욱 커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인플레이션과 함께 성장 둔화 우려도 나오고 있어 유럽중앙은행(ECB)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유럽연합(EU) 통계청인 유로스타트는 올해 2월 유로존 물가가 1년 전보다 5.8% 올랐다고 2일(현지시간) 발표했다. 통계 작성을 시작한 1997년 후 가장 큰 상승률이다. 예상치였던 5.4%도 훌쩍 넘었다.

에너지 비용이 1년 만에 31.7% 급등했다. 비가공 식료품 비용도 6.1% 상승했다. 지난달 유로존 물가는 1월에 비해서는 0.9% 올랐다. 유례없는 상승세가 지속되고 있다. 루이스 데 긴도스 ECB 부총재는 “당혹스러운 수치”라고 말했다.

유로존 물가가 이달엔 6% 넘게 상승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전쟁 탓에 에너지와 원자재 수급이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ECB는 오는 10일 통화정책회의를 연다. 통화 정책 방향을 결정하는 게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물가가 예상보다 가파르게 오른 데다 전쟁까지 시작됐기 때문이다. 경제연구기관인 판테온매크로이코노믹스의 멜라니 데모노 수석경제학자는 “ECB가 계획보다 일찍 경기 부양책을 끝낼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오는 10월 채권 매입을 마치고 12월께 금리를 올릴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반면 ECB가 예상보다 긴축 계획을 늦출 것이란 분석도 많다. 물가를 잡으려 시중에 푼 돈을 회수하려다 자칫 불황의 늪에 빠질 수 있어서다. 포르투갈과 그리스 중앙은행은 물가가 오르면서 성장 동력이 꺾여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엘가 바트시 블랙록투자연구소 연구책임자는 “전쟁이 없었다면 ECB가 다음주 회의를 통해 올해 말 금리 인상 계획을 발표했을 것”이라며 “하지만 지금은 내년으로 미루는 대안을 열어두고 싶어할 것”이라고 말했다. ECB가 속도 조절에 나설 것이라는 데 베팅하는 투자자가 늘면서 유럽 국채 값은 상승했다.

이날 캐나다 중앙은행은 연 0.25%였던 기준금리를 연 0.50%로 인상했다. 물가를 잡는 게 시급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캐나다 기준금리는 내년께 코로나19 이전 수준인 연 1.75%까지 오를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