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범국 굴레' 독일, 분쟁지역에 무기지원 공표…국방비 확대로 '정책 전환'
'군사적 중립' 스웨덴·핀란드도 무기 보내기로… 스위스는 EU 제재 동참
[우크라 침공] 중립국들도 화났다…'반전' 원칙 깨고 무기지원·제재동참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그동안 군사적 혹은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입장을 보였던 일부 유럽 국가들이 오랜 원칙을 깨고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공급하거나 제재에 동참하며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과 러시아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독일 정부는 지난달 26일 대전차 무기 1천정과 군용기 격추를 위한 휴대용 적외선 유도 지대공미사일 '스팅어' 500기 등 자국 연방군이 보유한 무기를 우크라이나에 보낸다고 발표했다.

이번 조치는 분쟁 지역에 무기 수출을 금지해온 독일의 오랜 정책을 뒤집은 것이다.

독일이 전날까지 우크라이나군에 보낸 유일한 무기는 헬멧 5천개가 전부였다.

우크라이나는 독일에 대공 방위 시스템 등 무기 공급을 요구해왔으나 독일은 분쟁지역으로 살상 무기를 공급하는 것은 엄격한 절차가 필요하다며 보류해왔다.

독일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침공 위협을 받았을 때도 미국과 영국, 폴란드 등과 달리 군사 지원을 거절했다.

심지어 제삼국으로 수출된 자국산 무기가 우크라이나로 가는 것까지 막았다.

독일은 그동안 소극적인 자세로 서방 동맹의 '약한 고리'로 평가받기도 했으나 러시아의 침공이 현실화하자 강경론으로 급선회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지난달 27일 특별연설에서 우크라이나로 무기를 보내는 것과 관련해 "푸틴 대통령의 공격에 다른 해답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숄츠 총리는 이와 함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새 시대에 접어들었다"며 독일 국방 강화 계획도 함께 발표했다.

그는 "앞으로 해마다 독일 국방비 지출을 국내총생산(GDP) 2% 이상 수준으로 늘리겠다"라고 밝히고 군대 현대화를 위해 올해 특별 연방군 기금을 설립, 1천억 유로(약 135조원)를 투자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이 역시 독일의 외교, 국방 정책의 대전환으로 평가된다.

로이터, dpa 통신에 따르면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 전범국이라는 자국의 역사와 이에 따른 국민들의 강력한 반전, 평화주의 등을 이유로 방위 문제와 관련해서는 소극적 입장을 취해왔다.

국방비 지출을 GDP의 2%로 늘리라는 미국 등의 압박에도 계속 저항해왔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독일은 국방에 GDP 1.53%를 쓴 것으로 추정된다.

스웨덴과 핀란드도 오랜 군사적 비동맹주의 정책의 원칙을 깨고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제공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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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는 돌격 소총 2천500정, 총알 15만발, 대전차용 무기 1천500대 등을, 스웨덴은 대전차용 무기 5천대와 헬멧 5천개, 방탄복 5천벌, 야전 식량 등을 보낼 예정이다.

산나 마린 핀란드 총리는 지난달 28일 이 같은 방침을 발표하면서 "핀란드에는 역사적인 결정"이라고 말했다.

마그달레나 안데르손 스웨덴 총리는 같은 달 27일 자국 안보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해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면서 자국이 군사 충돌 국가에 무기를 보낸 것은 1939년 구소련이 핀란드를 공격한 이래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EU 전문매체인 '유랙티브닷컴'(euractiv.com)에 따르면 핀란드와 스웨덴은 1990년대 군사적으로 중립을 유지하기로 결정한 이후 1995년 유럽연합(EU)에 가입하며 정치적 중립은 포기했다.

그러나 두 나라 모두 군사적으로는 비동맹주의 정책에 따라 중립적 입장을 지키며 나토에 가입하지 않고 있다.

이번 무기 지원은 이 같은 정책의 변화와 군사 분쟁 지역에 무기를 보내지 않는다는 원칙을 바꾼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스웨덴, 핀란드의 나토 가입 가능성에 대한 논의가 촉발될 수도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EU 차원에서도 우크라이나에 공급할 무기 구매, 수송 등에 EU 재정을 지원하기로 했다.

EU가 제3국에 대한 무기 공급을 지원하는 것은 전례 없는 것이다.

EU 행정부 수장 격인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이 같은 조치는 "사상 처음"이라고 밝혔다.

EU 외교정책을 총괄하는 호세프 보렐 외교·안보 정책 고위대표는 "또 하나의 금기가 깨졌다.

그것은 EU는 전쟁에서 무기를 제공하지 않을 것이라는 금기"라고 말했다.

중립국 스위스는 EU의 대러 제재에 동참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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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P, dpa 통신에 따르면 이냐치오 카시스 스위스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연방 평의회 회의 뒤 열린 기자 회견에서 EU가 이미 러시아에 대해 부과하고 있는 모든 제재를 스위스도 채택하기로 했다고 밝히고 "이는 스위스에 있어 큰 진전"이라고 말했다.

앞서 EU는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응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포함해 러시아 주요 인사들의 역내 자산을 동결하는 등 제재를 가했고 계속 추가 제재를 내놓고 있다.

스위스는 또 자국 영공에서 러시아 항공편 운항도 금지하기로 했다.

EU 회원국이 아닌 중립국 스위스는 그동안 이 같은 제재에 미온적인 입장을 보였다.

스위스는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의 독립을 승인했을 때 서방의 잇따른 제재 발표에도 동참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또한 스위스는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당시 서방의 제재에 동참하지 않고, 일부 러시아 관리에 대해서만 여행을 금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스위스 내부에서 서방 진영에 동참하라는 여론이 높아졌다.

스위스 중앙은행 자료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스위스에서 러시아인이 보유한 자산은 약 104억 스위스프랑(약 13조5천억원)에 달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