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보건기구(WHO)는 수면 부족을 ‘선진국의 유행병’이라고 선언했다. 선진국 성인 세 명 중 두 명은 잠자는 시간이 하루 8시간이 채 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세대를 거듭할수록 수면 시간은 더 줄어드는 추세다. 미국의 성인들은 증조부 세대보다 하루평균 두 시간 적게 잠을 자는 것으로 조사됐다. 미국인 세 명 중 한 명 이상은 하루 수면 시간이 7시간 미만인 것으로 나타났다. 수면 부족은 다양한 질병에 걸릴 확률을 높여 미국 경제에 연간 4000억달러의 손실을 입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잠자기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수면의 질을 높이는 기술인 ‘슬립테크’ 시장이 성장하고 있다고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보도했다. 스마트워치, 피트니스 트래커 등 웨어러블 기기 보급이 확대되면서 슬립테크 수요가 급증했다는 분석이다. 스타트업, 빅테크뿐만 아니라 보험사, 병원, 정부기관 등도 슬립테크산업에 뛰어들고 있다.
'꿀잠' 고픈 美·英, 슬립테크에 푹 빠졌다

잠이 중요한 이유

슬립테크가 주목받는 이유는 수면의 질이 건강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수면 부족은 알츠하이머병 우울증 치매 고혈압 당뇨병 등의 발병 확률을 높인다. 인지 능력, 주의력, 의사 결정에도 영향을 준다. 컨설팅업체 맥킨지에 따르면 수면 부족은 막대한 경제적 비용을 유발하기도 한다. 예컨대 독일은 수면 부족에 따른 경제적 지출이 매년 600억달러에 이른다. 호주는 수면 장애로 발생하는 직간접적 비용이 국내총생산(GDP)의 1%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수면 부족은 근로자들의 생산성에도 타격을 준다. 미국에서는 수면 장애로 인한 근로자의 결근 시간 합계가 연 1000만 시간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은 480만 시간, 독일은 170만 시간으로 조사됐다. 잠이 부족하면 업무 수행 능력이 떨어질 뿐 아니라 고용주가 부담해야 하는 의료 비용도 늘어난다. 맥킨지에 따르면 미국 기업의 경우 수면 부족에 따른 생산성 감소로 발생하는 손실이 근로자 1인당 연평균 1300~3000달러인 것으로 집계됐다.

전문가들은 수면의 질을 높이려면 자고 일어나는 시간을 일정하게 유지하라고 조언한다. 이른 아침에 자주 운동하고, 알코올과 카페인 섭취를 줄이는 것도 좋다고 한다. 잠자기 한 시간 전에는 휴대폰 같은 전자기기 사용을 자제하라고 당부한다. 기기에서 나오는 블루라이트 빛이 망막을 자극해 각성도를 높이고 수면주기를 해치기 때문이다.

다양한 슬립테크 기업

슬립테크 기기 중에는 수면의 질을 체크해주는 웨어러블 장치가 많다. 사용자의 수면 상태를 밤새 관찰하는 작은 센서를 웨어러블 기기에 담는 방식이다. 구글 삼성전자 화웨이 등 거대 정보기술(IT) 기업들도 기존 제품에 슬립테크 기술을 접목하는 추세다. 애플은 2017년 핀란드 침대 센서 제조업체 베딧을 인수해 ‘수면 추적’ 기능을 개발한 뒤 애플워치에 추가했다.

슬립테크 전문 스타트업은 더 화려한 제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핀란드 헬스케어 업체 오라헬스는 티타늄으로 제작된 스마트 반지 ‘오라링’을 판매하고 있다. 이 반지를 끼면 심박 수는 물론 혈중산소농도, 몸의 회복 상태 등을 실시간으로 점검할 수 있다. 미국 유명 모델 겸 방송인 킴 카다시안, 영국의 해리 왕손이 오라링을 애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라링이 시장의 주목을 받으면서 오라헬스는 가치 10억달러의 탄탄한 스타트업으로 성장하게 됐다.

영국 슬립테크 업체인 코쿤은 수면에 도움을 주는 ‘릴랙스 헤드폰’을 출시했다. 이 헤드폰을 착용하면 쓸데없는 주변 소음이 사라지고 수면에 도움이 되는 백색소음을 들으면서 잠을 청할 수 있다. 헤드폰에 장착된 센서는 뇌전도(EEG)와 사용자의 움직임을 추적한다. 미국 슬립테크 업체 에잇슬립은 스마트 매트리스로 주목받고 있다. 사용자의 체온 변화를 측정해 매트리스 온도를 조절하는 방식으로 최적의 수면 환경을 조성해준다고 회사 측은 설명한다. 가격은 퀸사이즈 기준 2845달러다.

불면증을 호소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슬립테크 시장 규모는 급격히 커지고 있다. 리서치업체 글로벌마켓인사이츠는 2020년 세계 슬립테크 기기 매출이 125억달러에 달한 것으로 집계했다. 2027년에는 이 규모가 세 배 이상 급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마테오 프란체체티 에잇슬립 대표는 “우리 회사는 말 그대로 세계의 모든 사람을 고객으로 여기고 있다”며 “국적과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잠을 자기 때문”이라고 했다.

실효성에 회의적 시각도

다만 슬립테크에 대한 회의적 시각도 만만치 않다. 예컨대 손목시계를 차거나 헤드셋을 착용하고 잠자기를 불편해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슬립테크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지만 아직 기술적으로 완벽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컨설팅업체 록헬스어드바이저리에 따르면 지난해 슬립테크 웨어러블 기기 사용자 중 약 40%가 원하는 효과를 거두지 못해 기기 사용을 중단한 것으로 조사됐다.

따라서 슬립테크 기기들은 꾸준한 기능 개선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코쿤 오라헬스 에잇슬립 등은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서비스를 위해 최근 유료 멤버십 제도를 도입했다. 이를 통해 꾸준한 수익을 낼 수 있다. 또 사용자들의 기기 이용 데이터를 축적해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슬립테크의 실효성을 의심하는 목소리도 많다. 과학자들은 슬립테크와 관련해 엄격한 임상 연구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무작위로 다수의 실험 참가자를 뽑아 플라시보(가짜 약) 실험을 거쳐야 한다는 얘기다. 잉고 피에제 독일 샤리테병원 수면센터장은 “삼성전자와 화웨이 측에 스마트워치의 수면 데이터 측정 방법을 공유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제대로 된 답변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어떤 웨어러블 기기도 전극을 이용해 뇌에서 직접 데이터를 뽑아내는 수면다원검사보다 정확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과학자들은 슬립테크가 가벼운 불면증 환자와 잠자리에 예민한 사람들이 병원 치료를 받을지 결정할 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실시간으로 산소포화도를 관찰하면 수면 무호흡증 같은 수면 장애를 확인할 수 있다. 수면 무호흡증은 수면 중 호흡 정지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것으로 세계 약 10억 명이 이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피에제 센터장은 “궁극적으로는 어떤 웨어러블 기기도 수면의 질을 본질적으로 높일 수 없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상용 기자 yourpenc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