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리포트

다 퍼줄 것처럼 굴던 中의 '돌변'

中, 일대일로 사업 벌이면서
아프리카에 차이나머니 뿌려
빌린 돈으로 항만 인프라 건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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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제시한 불공정한 대출 조항을 받아들이지 말았어야 했다.”

지난해 10월 28일 마티아 카사이야 우간다 재무장관은 의원들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코로나19로 경제가 어려워져 중국에 빌린 돈을 갚지 못해 대출금으로 지은 공항이 중국에 넘어갈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었다. 2년 전만 하더라도 “중국에 자산을 뺏길 일은 절대 없다”며 자신만만하던 그는 이날 얼굴을 들지 못했다.

2015년 우간다 정부는 우간다의 유일한 국제공항인 엔테베공항을 확장하기 위해 중국 수출입은행에서 2억달러(약 2400억원)를 빌렸다. 중국이 야심차게 추진하는 일대일로(一帶一路: 육상·해상 실크로드) 사업의 일환이었다. 하지만 채무를 상환하지 못하면서 불공정한 조항이 드러났다. 중국이 개발도상국을 빚더미에 앉게 해 주요 자산을 빼앗아간다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의존하게 해놓고…돈줄 죄는 中
"항만·공항 내놔라"…中 대출 덫에 빠진 아프리카

중국은 그간 일대일로 사업을 벌이면서 개발도상국에 재무 상태와 관련 없이 퍼주기식 대출을 해줬다. 공항 항만 등 주요 인프라가 부족했던 아프리카 국가들에 중국의 대출은 한 줄기 빛과 같았다. 중국 고위 관리가 한 번 방문했다 하면 ‘차이나머니’가 쏟아졌다. 그렇게 앙골라 우간다 에티오피아 잠비아 등 아프리카 39여 개 국가가 일대일로 사업에 참여했다.

그 결과 중국의 대출금은 아프리카 국가들의 채무에서 5분의 1을 차지했다. 아프리카 국가들이 차이나머니의 달콤함에 중독돼 갈 즈음 중국은 갑자기 돈줄을 죄고 대출을 줄이기 시작했다. 아프리카 국가들의 부채 규모가 상환 능력을 넘어서면서다. 존스홉스킨스대 중국·아프리카 연구소에 따르면 중국의 아프리카 대출액은 2016년 295억달러(약 35조5000억원)로 정점을 찍었다가 2019년 76억달러로 쪼그라들었다.

여기에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아프리카 국가들이 재정적인 어려움을 호소했다. 대표적인 국가가 잠비아다. 잠비아는 일대일로 사업에 참여하면서 국내총생산(GDP) 대비 공적 부채가 2010년 19%에서 2020년 120%로 급증했다. 이 중 3분의 1이 중국에 진 빚이다. 하지만 중국은 이전과 달리 별다른 지원을 하지 않았고 잠비아 정부는 결국 디폴트(채무 불이행)를 선언했다. 차이나머니를 받는 동안 발목에 ‘일대일로의 덫’이 채워져 있었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이라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적했다.
일대일로에 포함된 독소조항
아프리카 국가들이 중국에 진 빚을 갚지 못하면 중국도 손해보는 게 아닐까. 그렇지 않다. 중국은 손해보는 장사를 하지 않는다고 FT는 전했다. 대출 계약에 대출금을 상환하지 못하면 주요 인프라 운영권이 중국에 넘어간다는 조항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중국이 투자한 주요 인프라가 항만, 공항, 에너지 시설, 광산 등 부가가치가 큰 자산이기 때문에 중국으로선 돈 대신 이런 자산을 받는 게 남는 장사로 볼 수도 있다.

해당 국가의 주권을 침해하는 독소조항도 있다. FT에 따르면 우간다는 엔테베공항 관련 예산과 계획을 세울 때 중국 수출입은행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게다가 전체 계약은 중국 법의 적용을 받으며 분쟁이 발생할 경우 중국 법원에서 재판이 열린다. 중국이 공항 수익 중 일부를 부채 상환 준비금으로 직접 징수하는 조항도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대출 중 이런 조항을 갖고 있는 경우는 7%에 그치지만 중국은 30%에 달한다.

앞서 스리랑카는 일대일로 사업을 통해 남부 해안가에 대형 항구를 건설했지만 사업 부진으로 빚더미에 올랐다. 결국 2017년 연간 11억달러를 받는 임대 형식으로 99년간의 항구 운영권을 중국 기업에 넘겼다.
중국의 진짜 속내가 드러나다
중국은 이전과 같은 대규모 인프라 투자보다는 중소 규모 투자로, 또 퍼주기가 아닌 깐깐한 대출로 일대일로 사업의 방향을 틀고 있다. 중국의 경제 성장세가 둔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더 이상 개발도상국에 대규모 투자를 할 수 없다는 게 표면적인 이유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해 11월 중국-아프리카 포럼에서 앞으로 중국의 아프리카 투자는 대규모 인프라에서 중소기업, 그린 프로젝트 및 민간 투자에 집중될 것이라고 밝혔다. 영국 싱크탱크 왕립국제문제연구소는 “이는 중국이 종전의 고위험 투자에서 보다 더 작고 관리하기 쉬운 규모로 일대일로 사업을 전환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코로나19로 노동력과 물류가 묶인 것도 이런 정책을 부추긴 원인이다. 중국은 일대일로 사업을 하면서 현지 인프라를 구축할 때 해당 국가의 기업이나 노동력을 사용하는 대신 중국 기업과 노동자를 현지에 투입했다. 그렇게 빌려준 돈의 상당 부분이 중국으로 다시 들어오는 구조다. 하지만 코로나19로 현지에 노동자와 원자재 등을 보내기 어려워지면서 중국은 아예 돈줄을 죄고 현지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줄이고 있다. 녹색금융개발센터에 따르면 중국의 일대일로 투자는 2019년 1035억달러에서 2020년 470억달러로 급감했다.

중국이 이제 돈이 많이 드는 대규모 투자보다 일대일로 가입국 늘리기에 집중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노팅엄대 말레이시아 캠퍼스의 벤저민 바튼 교수는 “중국이 일대일로의 정당성을 강화하기 위해 회원 수를 늘리는 것에 더 초점을 맞추는 반면 투자 확대에는 덜 관심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일대일로는 남반구 저개발 국가를 대상으로 설계한 것”이라며 “결국에는 남반구 모든 저개발 국가가 참여하도록 밀어붙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백신 외교로 영향력 강화 노려
최근 중국은 보건·디지털 실크로드를 통해 개발도상국에 대한 사회적 영향력을 키우는 데 집중하고 있다. 백신 외교 등 의료 지원을 통해 중국의 소프트파워가 커지면 미국과의 대결 구도에서 앞설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또 대규모 인프라 투자보다 비용 적게 든다. ‘백신 민족주의’라는 비판을 받는 미국과도 대비될 수 있다. 중국은 지금까지 파키스탄 등 53여 개 개도국에 백신을 지원했다.

현지에 중국의 정보기술(IT) 인프라를 도입하는 디지털 실크로드는 패권 장악에도 도움이 된다. 중국의 IT 기술이 감시, 개인정보 침해, 보안 문제 등으로 비판받는 상황에서 이런 문제들을 합리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이집트 알제리 등 아프리카 23개국의 LTE(4세대 이동통신) 네트워크의 70%를 화웨이와 같은 중국 IT 기업이 관리한다. 이집트 등에 세워진 스마트 시티는 중국의 얼굴 인식 기술과 감시카메라, 인터넷 통제 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맹진규 기자 mae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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