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패스트푸드 체인점 중 한 곳인 치폴레는 2020년 8월 이후 작년 말까지 네 차례에 걸쳐 10% 넘게 가격을 올렸다. 기자가 최근 뉴욕 매장에서 확인한 대표 메뉴인 부리토볼의 단품 가격은 11.21달러. 가성비로 사랑받는 치폴레마저 한 끼에 1만3000원은 줘야 먹을 수 있게 된 것이다.

1년 새 휘발유 39%, 주거비 4% 상승…美 물가 고공행진 당분간 이어진다
미국의 물가 상승세가 심상치 않다.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같은 기간보다 7.0% 뛰었다. 1982년 후 최고치다. 서민들이 느끼는 체감 물가는 더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주요 패스트푸드점은 물론 달러트리 등 생활용품점이 잇따라 가격을 올렸다. 휘발유 가격은 18일(현지시간) 갤런당 3.31달러(전국 평균)에 달했다. 1년 전 2.38달러에서 39% 급등한 수치다. 필수 에너지인 휘발유 가격은 미국에서 민감한 물가지표다. 갤런당 3달러를 넘어서면 집권당이 선거에서 패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월가에서 가장 우려하는 것은 주거비다. 작년 12월 기준으로 전년 동기 대비 4.1%, 전달 대비 0.5% 각각 상승했다. 주거비는 한 번 오르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주택 임차료를 갱신하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주거비 상승이 새로운 인플레이션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임금 인상률도 가파르다. 패스트푸드점이나 대형마트의 평균 임금은 시간당 15달러 정도다. 연방 최저임금(7.25달러)을 두 배 이상 웃돈다. 실질 임금은 시간당 18달러 이상이란 분석도 나온다. 워낙 구인난이 심해서다. 고임금 근로자들의 임금도 급등세다. 작년 4분기 실적을 발표한 골드만삭스의 총 인건비는 32억5000만달러에 달했다. 1년 전보다 31% 늘었다.

잠깐 안정세를 보였던 유가도 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 확산 이후 상승하고 있다. 이날 뉴욕상품거래소에서 서부텍사스원유(WTI) 가격은 배럴당 85.74달러까지 치솟았다. 2014년 10월 후 7년여 만의 최고치다. 북해산 브렌트유 가격은 배럴당 88달러를 넘어섰다. 시장에선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할 것이란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만성적인 수급 불안 속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가능성 등 지정학적 위험이 가시화되고 있어서다.

전문가들은 지금과 같은 물가 상승세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공급망 혼란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임금 주거비 등 주요 항목은 더 크게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비영리 조사단체인 콘퍼런스보드가 세계 최고경영자 917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5%가 “인플레이션이 올해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응답자의 31%는 내년 이후까지 물가 압력이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물가 급등세는 올 2분기께 정점을 찍고 누그러질 것이란 분석이 많다. WSJ 설문조사에 따르면 경제학자들은 올해 말 CPI가 3% 안팎으로 떨어질 것으로 봤다. 상승률이 지금의 절반 이하 수준으로 낮아질 것이란 예상이다.

뉴욕=강영연 특파원 yy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