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의 진주들] 김희선 와일드씨드 대표
달리기를 하고 싶었는데, 집 밖을 나서는 게 너무 부담스러웠다. 다른 어떤 준비도 필요 없고 운동화 끈을 묶고 나서면 된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았지만 몸은 이런 핑계, 저런 핑계를 찾기만 했다. 그러던 어느날 친구들과의 단톡방에 “나가서 뛰겠다”고 적었다. 아무도 채근하지 않았지만 단지 그 이유만으로 나가서 뛰게 되었다.

"'따봉은 나의 힘' 이용해 기업용 그룹챌린지 서비스 기획했죠"

김희선 와일드씨드 대표(사진)가 2년 전 창업을 한 것은 달리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그가 ‘절망적으로 못 달리는’ 사람에서 하프 마라톤에 나가는 사람이 되기까지, 그를 이끌어준 ‘친구들('상뽐회'라는 이름도 있다-서로 상(相), 뽐뿌 뽐, 모을 회(會)라는 뜻)’의 존재를 사업 아이디어로 연결시켰다.

와일드씨드가 제공하는 서비스는 ‘코두(CoDo)’라는 이름의 기업용 교육 서비스 툴이다. “기업이 새로운 고객을 만났을 때 고객에게 자신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사용하는 법을 알려주어야 하는 수요가 있어요. 새로운 신입 직원이 들어왔을 때도 마찬가지로 직원에게 이런 저런 교육을 해줘야 하고요. 이런 교육을 효율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저희 툴이 사용됩니다.”

김 대표는 “내부 정규직 임직원에게 교육을 시키는 문제는 계약의 연장이나 성과보상과 연동돼 있기 때문에 비교적 간단하지만, 고객이나 단기간 근로하는 계약직 사원들이 교육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게 동기를 부여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기업들로서는 고객이 충분히 제품이나 서비스를 이해하지 않으면 만족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이것을 제대로 알려주고자 하지만 효과를 높일 방법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와일드씨드의 '코두' 서비스 설명화면. /와일드씨드

와일드씨드의 '코두' 서비스 설명화면. /와일드씨드

◆달리기에서 동기부여 원리 ‘깨달음’

그는 달리기를 못했던 자신이 하프마라톤에 이르게 해 주었던 친구들을 온라인에 구현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김 대표는 “’소셜’에서 가능성을 봤다”고 표현했다. “혼자서 교육자료를 받아서 들춰보고 이해하라고 하면 잘 되지 않지만, 팀원들끼리 서로 채팅을 주고받으며 자료를 보고 의미를 찾아낼 때에는 교육효과가 훨씬 높아지는 원리”라는 것이다.

“교육자료를 받으면 대부분 ‘다 알면 참 좋을 것 같아요, 그런데 나중에 볼께요’라는 반응이 와요. 그 ‘나중에’의 ‘나중’은 거의 대부분 오지 않아요. 우리는 이 부분의 동기부여를 어떻게 해결할까를 생각한 것이고, 여기서 ‘상뽐회’ 같은 존재를 떠올렸어요.” 코두는 각 기업의 교육 수요를 ‘그룹 챌린지’ 형태로 바꿀 수 있도록 해준다.

얼핏 보면 단순한 아이디어일 수도 있다. 평범한 한국인이라면 이 대목에서 ‘그래 창업을 하자’라는 생각에 이르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김 대표는 이미 테크기업, 스타트업, 창업 등 다양한 경험으로 무장한 ‘역전의 용사’였다.

◆무작정 미국유학이 길을 열었다

김 대표는 자신의 커리어 경로에 대해 “진짜 소가 뒷걸음질을 치다가 쥐를 잡았던 격”이라고 표현했다. 운이 좋았다는 얘기다. 그는 부산과학고등학교를 나와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산업디자인을 배웠다. 외환위기가 오기 전이었다. 1995년에 웹 디자인을 배울 수 있었다. HTML 1.0으로 할 때였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부끄러운 수준이지만, 웹디자인이나 인터랙션 이런 게 너무 신기해서 유학을 결심했어요.”

그는 미국 피츠버그에 있는 카네기멜론대학에서 인터랙션 디자인을 전공했다. 그의 인생에서 큰 전환점이 된 선택이었다. 2002년 카네기멜론대를 졸업할 무렵 미국은 닷컴버블 붕괴의 여파를 앓고 있었다. 다들 일자리를 잡기 힘들다고 했지만 그에게는 상황이 달랐다. 마이크로소프트(MS)에서 인턴십을 했고 모토롤라에서 모바일 디자인을 하는 일을 맡았다. “이후에 모바일이라는 산업 자체가 아주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커리어가 (저절로) 견인됐어요.”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일하던 시절의 김 대표. /김희선 대표 제공.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일하던 시절의 김 대표. /김희선 대표 제공.

김 대표는 “포드나 웨스팅하우스 이런 데로 간 친구들과 달리 나는 모바일회사로 갔기 때문에 산업의 성장과 함께 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2006년부터 MS에 합류했다. “특히 MS에서 윈도우즈 라이브 팀으로 들어가서 브랜드 런칭 경험을 하다 보니 ‘처음부터 시작하는 게 이렇게 재미있구나’ 느낄 수 있었지요.”

각종 자원이 풍부한 MS에서 5년간 일하던 어느 날 그는 문득 퇴사를 결심했다. “5년 근속패를 받았어요. 그게 ‘웨이크 업(일어나라는 알람) 콜이었어요. ‘내가 이렇게 오래 다닐 생각이 아니었는데, 언제 5년이 지나갔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대책 없이 때려치우고 나왔죠.”

이 무렵 그는 신혼이었다. 워싱턴대학교에서 파트타임으로 MBA도 마친 참이었다. 남편과 함께 실리콘밸리 쪽으로 넘어가기로 의기투합했다. “스타트업에서 일하자고 마음을 먹었어요.”

◆스타트업의 세계로

그는 이후 ‘커넥시브(Connexive)’와 ‘스트리버스(Strevus)’라는 회사에서 각각 사용자경험(UX)을 총괄했다. 자기 회사를 차리기로 한 것은 2015년. ‘유젯(UJET)’이라는 회사를 동료와 공동창업했다. “콜센터에 전화하면 (수십 분씩 실랑이를 벌여야 한다는 생각에) 큰 맘 먹고 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사실은 전화를 할 때는 대부분 애플리케이션 안에 안내된 전화번호를 누르는 것이고, 이미 로그인도 되어 있어요. 그러면 회사는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있잖아요? 그런데 왜 모르는가? 왜 다 알면서 모르는 사람 대하듯이 '너는 누구세요' 그런 것이 이해되지 않았어요. 이 부분을 확 줄여주는 것이 저희가 제공하는 서비스였어요.”

유젯은 콜센터 소프트웨어다. 콜센터에 전화한 사람이 통화를 할 때, 데이터 커뮤니케이션도 붙일 수 있게 했다. “그러면 어느 스크린에서 내가 막혔고, 지난 번에 무엇을 샀고, 스크린샷 바로 보낼 수 있고, 고객 서명도 바로 할 수 있게 된 거죠.”

왜 이런 것이 없었을까, 할 수도 있지만 그때까지는 시장에 전혀 없던 서비스였다. 누적으로 1억달러 이상 투자자금을 받았고 지금까지도 성공적으로 사업을 이어가고 있다.
김 대표가 공동 창업한 유젯(UJET) 단체사진. /김희선 대표 제공.

김 대표가 공동 창업한 유젯(UJET) 단체사진. /김희선 대표 제공.

◆소셜 모티베이션으로 '의지력 아웃소싱'

첫 번째 창업에 성공한 그는 2019년 홀로서기를 감행한다. “유젯은 콜센터를 위한 B2B(기업 간) SaaS(서비스로서의 소프트웨어)인데 와일드씨드가 만드는 ‘코두’도 비슷한 컨셉이예요.”

친구들의 독려로 달리기를 할 수 있게 된 그의 경험이 창업의 계기였다. “혼자보다 그룹으로 하는 게 더 효과가 좋고 꾸준히 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소셜 러닝’의 기법을 담았지요.”

그는 “요즘에는 교육 자료가 모자라지는 않다”고 했다. 뭔가를 알아야 한다면 유튜브 등 온갖 자료가 흔히 널려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자기 것으로 소화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고, 그 부분을 코두가 도와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고객들이 어떤 회사의 제품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야 할 때(고객 온보딩) 이런 툴의 필요성이 크다. 고객 온보딩을 돕는 방법에 관해 김 대표를 찾는 수요가 자꾸 늘어나다 보니 그 문제를 두고 강연을 한 적도 있다.

2019년 9월 창업 후 불과 반년만에 코로나19 팬데믹이 찾아왔다. 그가 막 투자를 받아야 하는 시점이었다. “그때는 아아, 하랄 때(남들이 지금 투자를 받으라고 할 때) 할 걸, 하고 후회를 했는데 오히려 전화위복이 됐어요. 이전에는 ‘그룹 챌린지를 하면 이게 좋아요, 저게 좋아요, 하고 설명했는데 재택근무 경험을 하다 보니 그 당위성을 투자자들이 이해하시더군요.” 그는 2020년 여름 코로나19가 한창이던 한국에서 HB인베스트먼트, 데브시스터즈벤처스, AF인베스트먼트 등으로부터 투자를 받는 데 성공했다. 작년에는 KB금융그룹에서 스타트업들을 뽑아 키우는 'KB스타터즈' 프로그램에 선정됐고, KB이노베이션 허브의 허브데이에서 우수기업으로도 선발됐다.
와일드씨드 직원들의 미팅 모습. /김희선 대표 제공.

와일드씨드 직원들의 미팅 모습. /김희선 대표 제공.

◆유연한 근무로 일과 육아 병행

그는 아들이 하나 있다. 아이를 키우면서 초기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한국과 달리 출산휴가나 육아휴직에도 오히려 인색한 게 미국이다. 하지만 김 대표의 답변은 ‘그래도 할 만 했다’는 쪽에 가까웠다.

유연한 근무 패턴이 그 이유였다. “테크 회사들은 굉장히 유연해요. 오후 5~6시에는 아이를 픽업해야 하니까 일을 못한다거나, 2~3시에 아이가 아파서 사무실을 나서야 한다는 것에 대해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아요. 집에 데려와서 뭘 좀 먹여놓고, 재우고 저녁에 일을 더 하고, 그런 사람이 아주 많아요. 지금은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이니까 많이 컸지요.”

그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고 했다. “할 일을 정해놓고 부부가 나눠서 분담하기도 했고, 주말에 가족이 함께 나가는 일이 드물었어요. 둘 중 하나는 쉬어야 하니까. 다 같이 나가면 쉴 수가 없으니까요. 아이가 하나라서 이런 삶도 가능했다는 생각도 들어요. 둘 이상이면 하나씩 전담하게 되어서 결국 온전한 휴식을 하기가 쉽지는 않더라고요.”

그래도 아이를 키워본 경험을 가지면 ‘스킬 셋(skill set)’이 조금 달라지는 것 같다며 그는 웃었다. “최근에 경력보유맘을 한 분 팀원으로 모셨는데, 아이를 키워 본 사람들만의 스킬 셋이 있습니다. 육아과정에서는 종합적으로 머리를 써야 하고, 멀티 태스킹이 되어야 하고, 다른 사람의 감정이나 상황을 잘 파악할 수 있어야 하지요. 직업에서 요구하는 스킬과 이런 역량이 결합하면 굉장히 빠르게 성장할 수 있어요.”

김 대표는 “스타트업과 스타트업 아닌 곳에서의 육아 경험에 큰 차이는 없었다”고 평가했다. “육아와 일하는 것이 그냥 ‘투 트랙’인 것 같아요.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부터 항상 양쪽을 다 신경쓰고 있는 상황이죠.”

최근 실리콘밸리에서 만난 스타트업 중에는 100% 재택근무(WFH)를 하는 회사가 적지 않다. 와일드씨드도 그런 회사다. “팬데믹 이전부터 다 원격근무 체제였어요. 본사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법인은 델라웨어에 있는데 직원들은 한국을 포함해 4개국 8개도시 4개 타임존에 나눠져 있어서 현실적으로 만나서 일하는 게 어렵기도 합니다.”

◆성장속도를 높이는 게 목표

그에게 새로운 창업의 계획이 있는지 물었다. 김 대표는 “아직 와일드씨드(코두)가 성장하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에 그 다음을 거론하기는 이르다”며 “지금의 목표는 꾸준히 성장하는 것, 그리고 속도를 증속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고객이나 임직원의 온보딩을 도와주고 이들이 안착하는 모습을 보는 것 자체가 큰 보람이예요. 사실 대부분은 동기가 없는 게 아니고 스킬 업을 하고 싶고 새로운 직무를 배우고 싶어해요. 다만 우선순위가 다르다 보니 쉽지 않은 것이지요. 이런 사람들은 조금만 더 넛지(쿡 찔러서 살짝 움직이게 하는 것)가 되면 해 낼 수 있어요.”

그는 “친구들에게서 오는 ‘따봉’, 그게 소셜 모티베이션(동기부여)인 셈인데 그런 방식으로 의지력을 아웃소싱하는 게 가능하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게 코두입니다. 이 커뮤니티가 크게 활성화되기를 바랍니다.”

실리콘밸리=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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