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 사업 꿈꾸며 사표 낸 40대 은행원…女 창업 불모지 인도 ‘2위 여성부호’ 되다
“팔구니 나야르와 같은 여성 롤모델이 남성 중심적 인도 스타트업 생태계에 변화의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인도 최대 온·오프라인 화장품 유통업체 나이카(Nykaa)의 나야르 최고경영자(CEO)에 대한 외신의 평가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하지 않은 인도에서 중년 여성이 창업에 이어 상장까지 성공시킨 사례는 드물다. 코로나19 여파로 ‘가사 도우미’ 역할로 전락하고 있는 인도 여성들에게 자극제가 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인도 자수성가 여성 중 1위 부자

뷰티 사업 꿈꾸며 사표 낸 40대 은행원…女 창업 불모지 인도 ‘2위 여성부호’ 되다
나이카의 모회사 FSN이커머스벤처스 주가는 인도 뭄바이 증시 상장 첫날인 지난달 28일 공모가 1125루피(약 1만8000원) 대비 96% 넘게 상승한 2205.8루피에 마감했다. 창업 초기만 해도 낯선 사업 모델을 향한 우려가 있었지만 흥행에 성공하며 535억루피의 자금을 조달했다. 기업가치는 140억달러(약 16조6000억원)로 평가받았다. 유니콘 기업(기업 가치 10억달러 이상 스타트업) 반열에 오른 지 2년도 되지 않아 거둔 성과다.

나야르의 자산도 덩달아 불어났다. 나야르는 가족과 함께 FSN이커머스벤처스 지분의 53.5%를 보유하고 있다. 블룸버그 억만장자 지수에 따르면 나야르의 순자산 규모는 지난 19일 기준 66억8000만달러(약 7조9000억원)에 달한다. 남편의 사업을 물려받은 한 여성에 이어 인도 두 번째 여성 부호다. 자수성가한 인도인 여성 중엔 최고 부자인 셈이다. 남녀 통틀어 인도에서 가장 부유한 20위 안에 든다. 나야르는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에 대해 보상을 받는 게 핵심”이라며 “주가는 보너스”라고 말했다.

2012년 설립된 나이카는 온라인 사업에 이어 2014년부터 오프라인 매장도 열었다. 현재 인도 전역 40개 도시에서 80여 개 매장을 운영 중이다. 자국 브랜드를 포함해 해외 유명 화장품 4000여 개를 판매하고 있다. ‘인도판 세포라’로 볼 수 있다. 2020년 4월부터 1년간 매출은 1년 전보다 38% 이상 오른 244억890만루피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6억6120만루피에 달해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인도서 화장품 시장 개척

나야르가 창업할 무렵만 해도 인도인들은 동네 가게에서 화장품을 구매해야 했다. 구멍가게에선 소비자의 선택지가 좁았다. 글로벌 브랜드의 화장품은 찾아볼 수 없었다. 구매 전에 제품을 미리 사용해 보기도 어려웠다. 나야르는 이런 불편함을 개선하고 인도인들에게 다양한 화장품의 세계를 열어주고 싶었다.

그는 창업의 꿈을 안고 20년 가까이 안정적으로 다니던 투자은행 코탁마힌드라를 박차고 나왔다. 50세를 목전에 두고 내린 결정이었다. 사명은 산스크리트어(고대 인도어)로 ‘여자 주인공’을 뜻하는 나이카로 정했다.

그는 소비자의 신뢰를 얻는 것을 우선순위에 뒀다. e커머스가 발달하지 않은 인도에선 온라인상에서 거래되는 제품의 신뢰도가 낮다는 점을 고려했다. 품질에 대한 소비자의 불신을 덜어내기 위해 다른 대형 e커머스와 달리 모든 제품을 직매입한 뒤 고객에게 선보였다. 무리한 할인도 피했다. “바르고 몇 분 안에 소비자를 불쾌하게 하는 립스틱을 반값에 파는 것보다 제대로 된 색상의 립스틱을 정가에 판매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나이카는 인도인들의 피부톤과 현지 날씨 등에 맞는 화장품도 판매하고 있다. 화장품의 자세한 사용법을 온라인상에 함께 제공하는 것도 특징이다. ‘리테일은 디테일에 있다’는 나야르의 경영철학을 따랐다. 나야르는 2015년부터 사업 다각화에 뛰어들었다. 나이카의 자체상표(PB)로 화장품을 만들고 의류와 생활용품 사업까지 진출했다. 중동 유럽 등 해외 진출도 계획하고 있다.

“여성들, 더 큰 꿈 꿔야”

인도에선 여성들의 창업이 흔치 않다. 인도 중앙은행(RBI)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인도 스타트업 중 여성 창업자가 설립한 곳은 5.9%에 불과했다. 38.6%는 여성과 남성 창업자가 공동 설립한 곳이었다. 인도는 성평등지수도 하위권이다.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하는 성격차지수를 기준으로 지난해 인도는 153개국 중 112위로 평가됐다. 한국(108위)보다 네 계단 낮다.

이런 척박한 환경 속에서 나야르의 성공은 더욱 눈길을 끌 수밖에 없다. 다만 그의 성공에서 유복한 가정 환경은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그는 볼 베어링 사업을 하는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가족들과 투자와 관련해 대화를 나눴다. 무엇보다 나야르의 도전정신은 높게 평가되고 있다. 그는 “50세 무렵 관련 경험도 없이 나이카를 시작했다”며 “이런 여정이 여성들에게 자신의 삶에서 주인공이 되는 데 영감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나이카 직원의 47%는 여성으로 채워졌다. 나야르는 “오늘날 새로운 세대의 여성은 자신의 커리어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며 “잠시 쉬는 일이 있더라도 일은 계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성들은 인생의 스포트라이트가 자신에게 집중되도록 해야 한다”며 “여성들이 자신을 위해 더 큰 꿈을 꿨으면 한다”고 했다.

허세민 기자 se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