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투자자들이 각국 중앙은행이 만든 꿈나라(Dreamland)에 살고 있다.”

월스트리트 ‘채권왕’으로 불리는 빌 그로스 핌코 설립자의 말이다. 그는 16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역사적으로 낮은 금리와 막대한 양의 채권 매입 프로그램이 주식부터 디지털 자산에 이르기까지 금융시장 전반에 희열(유포리아)을 키웠다”고 말했다.

장바구니 물가가 요동치고 있지만 각국 중앙은행은 시장에 계속 돈을 풀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공급난 탓에 상품 가치가 ‘일시적’으로 올랐다는 믿음 때문이다. 유동성 공급 속도를 늦추면 경기가 확 꺾일 것이란 두려움도 기저에 깔렸다.

그로스는 이런 중앙은행의 태도가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팬데믹(전염병의 대유행) 위기에서 벗어난 뒤에도 각국 정부가 경기부양책을 거둬들이지 않아 자산시장이 비정상적으로 커졌다는 진단이다. 크리스티안 제빙 도이체방크 최고경영자(CEO)도 전날 “최근 몇 년간 만병통치약으로 알려졌던 저금리 효과는 끝났고, 이제 그것이 만든 부작용에 시름하고 있다”며 “최대한 빠른 시기에 통화정책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독일의 지난 10월 물가가 28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급등한 데 대한 경고다.

미국 중앙은행(Fed)은 이달과 다음달 각각 채권 매입 규모를 150억달러씩 줄이기로 했다. 돈줄을 서서히 묶겠다는 의미다. 하지만 Fed 내부에서조차 시장 대응 속도를 더 높여야 한다는 요구가 나왔다.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투표권을 갖고 있는 제임스 불러드 세인트루이스연방은행 총재는 이날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FOMC가 좀 더 매파적(긴축 선호)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돈줄을 죄는 속도를 지금보다 2배로 높이고 내년에 최소 두 차례 기준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FT의 수석이코노미스트인 마틴 울프도 칼럼을 통해 “미국의 통화정책을 정당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모든 중앙은행이 코로나19 위기가 최고조에 달했던 지난해 3월 만든 정책에 묶여 있다”고 썼다. 그는 “급격한 물가 상승에 대응하지 않으면 위험이 예상보다 더 클 수 있다”며 “결국 Fed가 이를 따라잡을 수밖에 없고 그때의 비용은 지금 정책을 수정하는 것보다 훨씬 많이 들 것”이라고 했다.

그로스도 “2008년 이후 23조달러에 이르는 채권 매입 프로그램을 가동한 미국의 통화 실험이 어떤 장기 영향을 줄지 우려스럽다”며 “자본주의의 근간이 흔들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