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발전소가 기후 위기의 해답’이란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미국 학계에선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 폐쇄를 앞둔 캘리포니아 원전 수명을 연장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영국은 대형 원전보다 효율적인 소형 모듈원자로(SMR)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탄소 배출이 거의 없으면서 신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보완하는 에너지원으로 원전이 재조명받고 있다는 분석이다.

“원전 수명 늘려야 탄소중립 가능”

美학계 "원전 수명 늘려 기후위기 대처하라"
8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스탠퍼드대 매사추세츠공대(MIT) 등 학계와 에너지 컨설팅사 루시드카탈리스트는 캘리포니아주가 탄소중립 목표를 실현하려면 디아블로 캐니언 원전 1·2호기 수명을 연장해야 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캘리포니아주는 2045년까지 전력 부문의 탄소 배출을 제로(0)로 만든다는 법안을 통과시킨 상태다. 목표를 달성하려면 각각 2024년, 2025년에 폐쇄될 예정인 원전 1·2호기의 가동 기한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연구진은 보고서에서 탄소 배출이 적은 원전의 친환경적 특성을 강조했다. 디아블로 캐니언 원전의 폐쇄 시점을 2035년으로 연기할 경우 캘리포니아주 전력 부문의 탄소 배출량이 2017년 대비 10% 이상 감소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경제성도 내세웠다. 2035년까지 수명이 연장되면 26억달러(약 3조636억원), 2045년 이후에도 운영된다면 210억달러의 전력 생산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고 밝혔다. 바닷물을 담수화하는 과정에서 원전을 전력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제안도 내놨다. 기후변화 영향으로 극심한 가뭄에 시달리는 캘리포니아에서 깨끗한 물에 대한 수요가 높아진 상황을 고려한 것이다.

안전성 논란에 폐쇄했지만…

디아블로 캐니언 원전은 1980년대 중반부터 가동되기 시작했다. 40년 가까이 운영되며 캘리포니아주 전력 공급량의 약 8%인 2240메가와트(㎿)를 책임지고 있다. 하지만 디아블로 캐니언 원전을 소유한 미 전력회사 퍼시픽가스앤드일렉트릭(PG&E)은 2016년 원전의 해체 결정을 내렸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에 따른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촉매제가 됐다. 미 서부 해안가에 인접한 디아블로 캐니언 원전이 지진 발생 가능성이 있는 단층선 근처에 세워진 것도 캘리포니아 주민의 공포심을 키웠다.

폐쇄 시점이 다가오고 있지만 원전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목소리는 오히려 커지고 있다. 원전 해체 결정 당시 관측과 달리 신재생에너지를 통한 전력 생산량이 원전을 대체할 만큼 충분하지 않아서다. 지난해 8월엔 캘리포니아를 덮친 폭염으로 전력 사용량이 급증하면서 정전 사고가 발생했을 정도다. 빈번한 가뭄으로 수력 발전 의존도 위험해진 상황이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에너지부 장관을 지낸 스티븐 추 스탠퍼드대 교수는 “일본과 독일이 원전을 폐쇄했을 때 화석연료에 의한 탄소 배출이 증가했다”며 “기후변화에 가장 잘 대처하기 위해선 원전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이번 조사 결과를 캘리포니아 주정부 관계자와 공유한 상태다.

英 정부, SMR 개발에 투자

대서양 건너 영국에선 SMR 개발이 본격화하고 있다. 영국 항공기 엔진 제조사 롤스로이스는 민간과 정부로부터 총 4억500만파운드(약 6500억원)를 지원받아 SMR 개발에 착수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9일 보도했다. 롤스로이스는 향후 3년간 미 원전업체 엑셀론제너레이션 등과 협력해 SMR 개발을 위한 벤처기업을 세울 계획이다. 영국 내에서 사용이 승인된다면 롤스로이스 SMR은 영국 전역에 최소 16개가 설치된다.

‘탄소중립 2050’을 선언한 영국은 대형 원전보다 안전하고 효율적인 SMR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콰시 콰르텡 영국 경제부 장관은 “영국이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저탄소 에너지를 배치하고 더 높은 에너지 자립을 보장할 수 있는 일생에 한 번뿐인 기회”라고 했다. 영국뿐만 아니라 프랑스 미국 등 다른 서방 국가도 내수와 수출용 SMR을 개발하고 있다고 FT는 전했다.

허세민 기자 se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