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지 서명운동에 제1야당은 개정 언급…여권 "절대 불가"
"개정 vs 반대" 태국서 다시 주목받는 '금기' 왕실모독죄

코로나19 사태로 정치적 이슈가 자리잡을 틈이 없었던 태국 정치권에서 최근 왕실모독죄를 놓고 논란 조짐이 보이고 있다.

주요 야당이 개정 필요성을 제기하자, 기득권 세력이 '절대 불가'를 외치며 반박하고 있다.

태국 형법 112조에 규정된 이른바 '왕실 모독죄'는 왕과 왕비 등 왕실 구성원은 물론 왕가의 업적을 모독하거나 왕가에 대한 부정적 묘사 등을 하는 경우 최고 징역 15년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입헌군주제인 태국에서 왕실은 신성시되는 존재다.

이 때문에 태국 사회에서 군주제 개혁 요구는 금기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지난해 2월 젊은층의 높은 지지를 받던 야당인 퓨처포워드당(FFP)이 헌법재판소에 의해 강제 해산된 후 불거진 반정부 시위를 계기로 변화가 일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7월 재개된 시위에서 총리 퇴진과 군부헌법 개정은 물론 금기시됐던 군주제 개혁 요구까지 분출하면서 국내외의 주목을 받았다.

태국 정부는 2018년부터 2년여간 왕실모독죄를 적용하지 않다가 지난해 하반기 반정부 시위에서 군주제 개혁 요구가 분출하자 다시 칼을 빼들어 잇따라 사법 처리에 나섰다.

이런 서슬퍼런 분위기에다 올 들어 코로나19 사태가 대거 확산하면서 군주제 개혁 요구는 사실상 사라지다시피 했다.

정부가 코로나 확산 방지를 이유로 집회를 금지한데다, 코로나 사태로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군주제 개혁 이슈가 여론의 관심을 받기 힘들었던 측면이 컸다.

8월부터 도심에서 벌어진 시위 역시 코로나19 관리 무능을 고리로 한 쁘라윳 총리 퇴진이 중심 이슈였다.

"개정 vs 반대" 태국서 다시 주목받는 '금기' 왕실모독죄

그러나 지난달 31일 방콕 도심에서 수천 명이 참가한 가운데 왕실모독죄 폐지를 주장하는 집회가 열리면서 해당 이슈가 다시 주목을 받았다.

시위 참가자들은 왕실모독죄 폐지를 위한 100만명 서명 운동을 전개하기로 했다.

여기에다 제1야당인 푸어타이당이 같은 날 성명을 내고 법 개정 필요성을 제기하면서 본격적으로 논란이 촉발됐다.

푸어타이당은 이 법이 어떻게 반정부 인사들을 처벌하는데 사용되는지를 의회 차원에서 들여다봐야 한다고도 했다.

태국 인권단체인 '인권을 위한 태국 변호사들'(TLHR)에 따르면 지난해 반정부 시위가 시작된 이후 왕실모독죄로 처벌된 이는 미성년자 12명을 포함해 최소 155명에 달한다고 로이터 통신은 전했다.

강제 해산된 FFP의 후신인 전진당(MFP)도 연초 왕실모독죄 형량을 기존 최장 15년에서 1년으로 바꾸는 개정안을 내놓았지만, 헌법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의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입헌군주국인 태국의 헌법에 '군주는 숭배받아야 하고 (권위가) 훼손돼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일부 야당도 왕실모독죄 개정에 찬성하고 있다.

그러나 연립정부를 이끄는 팔랑쁘라차랏당을 비롯해 여권 정당들은 이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팔랑쁘라차랏당을 이끄는 쁘라윗 웡수완 부총리는 "우리 당은 왕실모독죄를 개정하는 어떠한 시도도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못을 박았다고 신문은 전했다.

연립정권 일원인 품짜이타이당을 이끄는 아누틴 찬위라꾼 부총리 겸 보건부장관도 "당이 만들어졌을 때부터 형법 112조는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고,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라며 같은 입장을 드러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쁘라윳 짠오차 총리도 "우리 국가의 안보에 관한 문제"라면서 "태국 국민들이 숭배하는 것을 파괴하는 것은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2006년 쿠데타로 실각한 뒤 망명 생활 중인 탁신 친나왓 전 총리가 SNS를 통해 왕실모독죄는 문제가 없고, 이를 정치적 목적으로 악용하는 정부가 잘못이라고 언급해 반정부 세력의 비판이 쇄도했다고 방콕포스트는 전했다.

서민층을 일컫는 '레드 셔츠'의 지지를 받는 탁신 전 총리가 왕실모독죄 개정에 부정적 입장을 밝힌데 대해서는 향후 고국으로 돌아오는 데 왕실의 힘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따른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고 신문은 덧붙였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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