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중학교 급식실을 배경으로 한 영상이 중국 온라인상에서 화제가 됐다. 교장 선생님이 학생들이 남기려던 잔반을 싹싹 먹어 치우는 모습이었다. 당황한 몇몇 학생은 제자리로 돌아가 급식판을 깔끔히 비워냈다.

중국에선 음식물 쓰레기를 남기면 학생들에게 불이익을 주는 학교도 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한 학교는 정해진 양을 초과해 음식물 쓰레기를 버릴 경우 학생들의 장학금 신청을 금지하기로 했다. 모두 지난해 8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음식물 쓰레기와의 전쟁’을 선포한 이후 발생한 일들이다.

중국이 음식물 쓰레기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 치솟는 식재료 가격에다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인한 공급망 불안이 식량 위기로 번질 수 있다는 위기감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다. 내년 말 3연임을 앞둔 시 주석의 민심 다잡기 행보라는 해석도 나온다.
"식당서 1인분만 시켜라"…中 '먹을 자유'까지 규제

○폭식 규제 나선 中

이달 초 중국 정부는 음식점에서 필요한 양을 초과 주문하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의 시행 계획을 내놨다. 음식을 낭비하는 식당을 신고하도록 권장하는 내용도 담겼다. 식당엔 소용량 음식을 제공하라고 지시했다. 이외에도 기업들이 회의를 명목으로 호화로운 연회를 여는 것을 금지하는 등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는 28가지 방안이 포함됐다. 2025년까지 유효한 내용들이다.

이번에 구체화된 시행 계획은 올 4월 제정된 직후 적용되고 있는 ‘음식물 낭비 금지법’의 연장선상에서 발표됐다. 당시 중국은 폭식을 초래할 수 있는 ‘먹방(먹는 방송)’을 제작하거나 배포할 때 최대 10만위안(약 1700만원)의 벌금을 부과한다고 밝혔다. 과도한 음식 주문을 유도하는 음식점엔 최대 1만위안의 벌금을 매기고 있다. 새롭게 추가된 내용엔 음식물 쓰레기 배출을 최소화할 수 있는, 보다 다양한 방안이 담겼다. 남은 음식을 동물용 사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분류해야 한다는 방침이 대표적이다.

음식물 낭비 금지법은 중국의 오랜 식문화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이다. 중국에선 집으로 초대받았을 때 음식을 남기는 게 매너로 통해서다. 중국인들은 집주인의 환대에 대한 감사의 의미로 음식을 남긴다. 이 같은 관습 탓에 중국은 음식물 쓰레기 배출량 순위에서 압도적인 세계 1위를 기록했다. 유엔환경계획(UNEP)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중국은 가정에서만 약 9165만t의 음식물 쓰레기를 배출했다. 2위인 인도(6876만t)보다 33% 많은 양이다. 대도시에서 발생하는 음식물 쓰레기가 특히 많다. 2015년 베이징 상하이를 비롯한 중국 대도시 네 곳에서 1700만~1800만t의 음식물 쓰레기가 배출됐다. 이는 매년 5000만 명이 먹을 수 있는 양과 맞먹는다고 중국과학원은 밝혔다.

음식물 쓰레기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하자 2013년 중국에선 시민 주도의 ‘깨끗한 그릇 캠페인’이 시작됐다. 추진력을 얻지 못하던 이 캠페인은 시 주석의 한마디에 법제화까지 이뤄졌다. 시 주석은 지난해 8월 “음식 낭비는 충격적이고 고통스러운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식량 위기는 안보 문제

시 주석이 음식물 쓰레기에 선전포고를 한 것은 단순한 절약 차원이 아니다. 기저에는 중국의 ‘식량 안보’를 강화하려는 포석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 많다. 옥수수 밀 소고기 등 중국의 농축산물 수입이 증가하고 있어 과도한 해외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조치라는 설명이다.

특히 최근 중국에선 미국산 농축산물 수입량이 늘고 있다. 중국 글로벌타임스는 “올해 중국의 옥수수 수입량은 사상 최대인 3000만t을 넘어설 수 있으며 미국이 최대 공급국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수입 옥수수에 대한 중국의 수요는 돼지 생산의 반등과 함께 계속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미국산 식량에 대한 높은 의존도는 미·중 갈등 국면 속 중국의 ‘약한 고리’로 작용할 수 있다. 더욱이 코로나19 사태로 중국에선 식량 공급망 차질의 우려가 높아진 상황이다. 미국 금융회사 스톤엑스그룹의 다린 프리드리히스 수석애널리스트는 “코로나19 사태가 촉발한 공급난 공포로 중국은 식량 안보와 자급자족을 다시 강조하게 됐다”며 “여기엔 곡물 수입처의 다변화와 음식물 낭비를 줄이기 위한 노력도 포함된다”고 분석했다. 시 주석도 지난해 8월 “코로나19 대유행이라는 엄중한 사태를 맞아 식량 안보에 대한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조치는 채소 공급 부족에 따른 가격 급등 현상과도 관련이 깊다. 올여름 채소 주요 생산지인 산둥성 허난성 허베이성에 내린 폭우로 중국에선 채소 공급이 차질을 빚고 있다. 중국 상무부에 따르면 지난달 22일까지 한 달간 채소 도매가는 28% 뛰어올라 ㎏당 6위안 수준에서 거래됐다. 올 2월 이후 가장 높은 가격이다. 일부 지역에선 돼지고기보다 채소가 비싼 이상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중국 당국은 적정량만 주문하도록 강제하면서 안정적인 식자재 관리에 팔을 걷어붙인 것이다. 중국 정부가 최근 비상 상황에 대비해 음식, 생필품 등을 비축하라고 지시한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시진핑의 3연임 ‘큰 그림’

중국이 ‘먹거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역사적인 배경에서 비롯됐다는 해석도 있다. 4500여만 명이 굶어 죽은 ‘대약진 운동’의 비극이 중국인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는 것이다. 대약진 운동은 마오쩌둥의 주도 아래 1958년부터 4년간 추진된 농·공업 증산 정책이다. 비현실적인 목표 생산량과 달리 당시 농민들은 관개 사업에 동원되느라 농사를 지을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대규모 아사가 발생했고 마오쩌둥은 대약진 운동 실패의 책임을 지고 국가주석 자리에서 물러났다.

시 주석은 내년 10월께 공산당 제20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에서 3연임을 확정 짓는다는 목표다. 장기 집권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선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 민심을 얻는 게 중요하다. 블룸버그통신은 “현재 중국은 결코 대약진 운동 정도의 재난 수준에 있지 않다”면서도 “그러나 지도자들은 코로나19 대유행에 따른 봉쇄에 직면함에 따라 시민들을 더 따뜻하게 하고 먹여 살릴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식습관 규제에 대한 중국 시민의 반응은 엇갈린다. 특히 자유를 중시하는 젊은 층과 대약진 운동 시대를 경험한 중년층 이상의 반응이 상반된다. 79세의 왕야친은 “사탕무 과육과 옥수수 국수를 섞은 것 외에는 먹을 게 거의 없었다”며 “깨끗한 그릇 캠페인은 훌륭하다”고 말했다. 광저우에 사는 21세 대학생 사만다 판은 “이런 방식은 소용이 없을 뿐만 아니라 매우 지루하다”며 “원하는 만큼 주문하는 것과 음식을 낭비하는 것 역시 개인의 자유”라고 강조했다.

허세민 기자 se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