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개월 만에 협상 재개…미국, 이란 압박 지속
이란 "미국은 말과 행동 다르다", '평화적 핵활동' 주장
갈 길 먼 이란 핵합의 복원…협상 재개 앞두고 신경전
이란의 핵 활동을 제한하는 대가로 국제 사회가 경제 제재를 풀기로 한 이란 핵합의(포괄적공동행동계획.JCPOA)를 복원하기 위한 협상이 재개된다.

그러나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협상의 열쇠를 쥔 미국과 이란의 입장 차이가 여전히 큰 탓이다.

알레 바게리 카니 이란 외무부 차관은 핵합의 서명국과 협상을 이달 29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재개한다고 밝혔다.

이란 측 핵 협상 대표인 카니 차관은 3일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이란과 협상을 조율하는 엔리케 모라 유럽연합(EU) 대외관계청 사무차장과 이같이 합의했다고 확인했다.

이란 핵합의는 2015년 이란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5개 상임이사국(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과 독일 등 6개국과 맺은 국제적 약속이다.

이란은 우라늄 농축 등 핵 활동을 동결 또는 축소하고 서방은 대(對)이란 제재를 해제하는 '행동 대 행동'을 골격으로 한다.

그러나 2018년 5월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일방적으로 핵합의를 파기하고 제재를 부활하자 이란도 이에 맞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을 제한하고 우라늄 농축 농도를 60%까지 상향하는 등 핵 활동을 재개했다.

이란은 지난 4월 초부터 빈에서 러시아, 중국, 프랑스, 영국, 독일과 핵합의 복원을 위한 협상을 6차례 진행했다.

미국은 직접 협상에 나서지 않고 간접 대화 방식으로 참여했다.

이 같은 간접협상마저도 강경보수 성향인 세예드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이 지난 6월 대선에서 승리한 뒤 중단됐다.

이란은 그러나 EU와 협상 재개 방안을 지속적으로 논의했고, 핵합의 복원을 위한 당사국 간 협상이 다시 열리게 됐다.

미국은 일단 협상 재개에 대해서는 환영한다는 입장이지만 이란 측의 입장 변화를 촉구하며 유보적인 태도다.

네드 프라이스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이란이 선의로 돌아오길 희망한다.

이란이 진지하다면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에 합의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며 이란에 공을 넘겼다.

그러면서 "이란이 계속 도발적인 핵 활동을 한다면 기회의 창이 영원히 열려 있진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핵합의에 복귀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도 이란에 의무 이행 조건을 내거는 데 대해 이란 정부는 미국이 경제 제재를 우선 해제해야 한다고 맞선다.

라이시 이란 대통령은 6월 이후 중단된 핵합의 협상과 관련, 미국이 이란에 대한 제재를 해제해 협상 재개에 관한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고 요구했다.

지난달 18일 이란 국영 TV 회견에선 "이란은 서방과 목표 지향적인 회담을 추구하고 있다.

이란은 협상 테이블을 결코 떠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란은 미국이 협상을 앞둔 상황에서도 이란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는 것에 대해 "미국은 말과 행동이 다르다"고 비난한다.

사이드 하티브자데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지난 1일 기자회견에서 "미국은 새로운 제재를 통해 트럼프 행정부와 다름없는 '최대 압박' 정책을 지속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서방의 주장은 대부분 사실과 다르다.

이란의 우라늄 농축과 우라늄 생산은 연구와 의료용"이라며 이란의 핵 활동이 평화적 목적임을 강조했다.

이란은 최고지도자의 명령(파트와)로 핵무기를 제조하지 않는다는 게 공식적이고 일관된 입장이다.

미국·영국·프랑스·독일 정상은 지난달 30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열린 이탈리아 로마에서 만나 이란 핵문제를 주요 의제로 논의했다.

이들은 공동 성명에서 "고농도 우라늄 농축을 지속하는 등 이란의 도발적인 핵 활동을 심각하게 우려한다.

이런 이란의 행동이 핵합의 복원 가능성을 희박하게 한다"고 경고했다.

미국은 이란에 대한 압박을 아직 풀 기미가 없다.

미국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은 지난달 29일 이란 혁명수비대 무인기 사령부를 이끄는 사이드 아가자니 준장을 제재한다고 밝혔다.

혁명수비대 무장 드론이 중동 지역에 주둔하는 미군과 걸프 해역을 지나는 여러 국가의 선박을 공격했다는 이유에서다.

미국은 혁명수비대의 무인기 개발을 지원하고 부품을 공급한 업체 2곳에 대해서도 제재를 가했다.

이란 핵협상 재개 소식이 전해진 3일 미국과 이란은 오만해 유조선 나포를 둘러싸고도 공방을 벌였다.

이란은 미국 해군이 오만해에서 이란 원유를 실은 유조선을 나포하려 했으나 혁명수비대가 이를 저지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미국은 실제 외국 선박을 납치한 쪽은 이란이라고 반박했다.

호르무즈 해협과 이어지는 오만해는 중동 주요 산유국의 원유 수출 항로로 이용된다.

이 지역은 미국 군함과 이란 혁명수비대 함정 간 군사적 마찰이 빈발하는 곳이다.

갈 길 먼 이란 핵합의 복원…협상 재개 앞두고 신경전
협상 재개 소식에도 미국과 이란 간 국지적인 군사 충돌 가능성은 상존하는 것으로 관측통들은 본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지난달 외교적 수단을 동원한 핵합의 복원이 실패하면 '모든 선택지'를 고려하겠다고 언급했다.

핵합의 복원 자체를 강하게 반대하는 이스라엘은 이란의 핵무장 저지를 위해 언제든 군사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협상을 앞두고 미국이 이란에 대한 압박을 강화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런 민감한 국면 속에 지난달 30일 미군의 B-1B 전략폭격기가 중동지역을 비행했다.

이스라엘 공군기가 호위하는 가운데 미군 폭격기는 호르무즈 해협 등 페르시아만(걸프해역), 홍해 일대, 이집트의 수에즈 운하 등 해상 요충지를 비행했다고 미국 공군이 밝혔다.

미국은 트럼프 행정부 당시부터 B-52 등 전략폭격기를 중동에 보내 이란을 겨냥해 위력을 과시했다.

특히 2018년 미국의 일방적인 핵합의 파기를 계기로 이란과 갈등이 고조된 이후로는 미군 전폭기의 중동 출격이 잦아졌다.

바이든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미군 전폭기가 총 3차례 중동에서 무력 시위를 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