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법치·사법권 독립 등 기준 충족해야 '합격'…2013년 이후 안늘어
터키·우크라·발칸 6개국 등 가입 희망하지만 기준에 '미흡' 평가
EU 회원국 확대 정체…가입 협상은 지지부진
유럽연합(EU)의 회원국을 늘리려는 노력이 좀처럼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EU는 1957년 유럽경제공동체(EEC)에 참가한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서독, 이탈리아, 프랑스 등 6개국으로 시작됐다.

이후 계속 회원국을 받아들여 현재 유럽 대부분 국가가 참여한 거대한 경제·정치·안보 공동체로 발돋움했다.

2004년 폴란드, 헝가리, 체코 등 10개국이 가입하고, 2007년에는 불가리아와 루마니아가 가입한 데 이어 2013년에 크로아티아가 가입함으로써 한때 회원국이 28개국에 달했다.

그 후 영국이 EU를 탈퇴해 현재는 27개국으로 줄었다.

크로아티아 가입 이후 8년 이상 새로운 회원국이 가입하지 못한 것이다.

EU 집행위원회는 확대담당 집행위원을 두고 EU 가입 대상국들과 가입 조건, 자격 등에 관한 협상을 벌이고 있다.

EU는 올해 들어 발칸 국가들의 가입을 위한 노력을 강화하고 있으나 일부 회원국의 반발로 협상 진척이 쉽지 않아 보인다.

EU와 서부 발칸 6개국 정상은 6일 EU 순회 의장국인 슬로베니아에서 만나 EU 가입 문제를 논의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아직 EU에 가입하지 못한 발칸 국가들이 EU에 가입하기를 원한다고 말하고 "우리는 같은 역사와 가치를 공유하는 하나의 '유럽 가족'"이라고 강조했다.

EU 집행위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발칸 국가들이 러시아나 중국과 관계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EU가 이들을 받아들이는데 전향적 태도를 보일 것을 요청한다.

올리베르 버르헤이 EU 확대담당 집행위원은 "EU를 서발칸으로 확대하는 것은 집행위의 최우선 과제"라고 말하고 EU 가입 절차 개선 방안을 제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EU 회원국 확대 정체…가입 협상은 지지부진
EU 집행위의 이 같은 입장과 달리 프랑스, 네덜란드 등은 이들 국가의 EU 가입 여건이 미비하다면서 제동을 걸고 있다.

특히 프랑스는 1990년대 내전의 상흔이 아직 남아있고 범죄와 부패와 씨름하는 발칸 국가를 받아들이는 데 반대하면서 우선 EU의 회원국 확대 시스템부터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프랑스 등 서유럽 국가들은 EU 가입 요건의 엄격한 적용을 요구하면서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등 기본적인 체제 문제에서 조건을 충족할 준비가 안 된 국가의 가입을 서두르지 말라고 요구하고 있다.

발칸 국가 중 이미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는 EU에 가입했으며 알바니아, 몬테네그로, 북마케도니아, 세르비아는 후보국으로 선정돼 가입 협상 중이다.

또한 보스니아와 코소보는 예비후보국으로 본격적인 협상을 앞뒀다.

EU 후보국이 EU 회원국으로 정식 가입하려면 까다로운 가입 협상을 거쳐야 한다.

우선 기본적으로 후보국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사법권 독립 등 민주국가 체제를 갖춰야 하며 인권을 보장하고 소수자에 대한 보호 장치도 마련해야 한다.

시장경제가 기능해야 하며 공정한 경쟁이 보장되어야 한다.

또한 EU의 법률체계를 수용하고 경제통화동맹에도 참여해야 한다.

이런 기준을 충족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EU와 후보국은 30여 개로 세분된 분야에 대한 협상과 검증작업을 진행한다.

EU와 지난한 가입 협상을 벌여야 하는 후보국은 EU에서 일정한 재정적, 행정적, 기술적 지원을 받게 된다.

EU 회원국 확대 정체…가입 협상은 지지부진
EU와 가장 오랜 기간 가입 문제로 논란을 빚는 나라는 터키다.

1970년대부터 당시 EEC에 가입하려고 시도했던 터키는 1987년에 가입을 신청한 이래 30년 넘게 EU 회원국이 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왔다.

터키는 2002년 의회에서 사형제 폐지와 쿠르드어 방송 허용 등 EU가 제시한 가입 협상 개시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 개혁법안을 통과시켰고 2004년 12월 비로소 후보국 지위를 얻었다.

EU와 터키는 지난 2005년부터 가입 협상을 시작했다.

그러나 키프로스 영토 분쟁과 독일, 프랑스 등의 반대로 협상 중단과 재개를 반복했다.

2016년 쿠데타 진압 후엔 관련자에 대한 대대적 투옥과 해고, 기관 폐쇄, 기본권 제한 조처가 이어지고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서방과 대립각을 세우면서 가입 협상이 교착됐다.

EU 집행위는 가입 협상이 시작된 지 10년이 지난 2015년 11월 발표한 터키에 대한 가입자격 평가 보고서에서 최근 수년간 터키의 개혁은 둔화했으며 주요 입법은 유럽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 보고서는 특히 터키의 인권 보호와 기본적 자유권 보장이 '상당히 미흡한 상태'에 머물러 있다고 밝혔다.

터키의 인권 상황과 민주화, 언론 자유, 그리고 사법제도의 독립성 등을 부정적으로 평가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유럽 국가'임을 강조하는 터키는 EU 가입에 대한 의지에 변함이 없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지난 1월 터키 앙카라에서 열린 EU 회원국 대사 회의에서 "우리는 유럽과 함께 미래를 계획한다.

우리는 EU 가입이라는 최종 목표를 포기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우크라이나는 2014년 러시아가 크림반도(크림 자치공화국)를 합병하고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의 친러시아 반군을 러시아가 지원한 이후 EU 및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을 추진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친서방 정권이 들어선 직후인 2014년 6월 EU와 자유무역지대 창설을 포함하는 포괄적 협력협정을 체결했다.

우크라이나-EU 간 자유무역협정(FTA)은 2016년 1월 발효했다.

2019년 5월 취임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전 정권이 추진한 친서방 정책 노선에 변화가 없다고 천명하고 EU, 나토 가입은 우크라이나의 전략적 노선이며 헌법에 명시됐다고 강조했다.

우크라이나의 이런 입장에도 EU는 아직 우크라이나와 가입 협상에 미온적이다.

우크라이나는 아직 후보국이나 예비 후보국에도 오르지 못했는데, 이는 우크라이나가 아직 러시아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내전 상황이 계속되기 때문으로 보인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