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부터 ‘주유 대란’을 겪고 있는 영국에서 ‘패닉 바잉’ 현상이 유통업 등 다른 분야로 확산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성수기를 앞두고 공급망 문제가 심화하면서 “우울한 성탄절을 맞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2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영국 보수당 의원인 데이비드 모리스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1978~1979년 대규모 노동조합 파업으로 불거진 ‘불만의 겨울’이 재연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당시 정부의 임금 인상률 상한제에 반발한 트럭 운전기사들이 파업을 벌이면서 영국 내 물류 운송이 사실상 마비됐다. 철도 근로자와 간호사 청소부 등 다른 직종 근로자들이 파업에 동참하면서 영국 사회의 혼란이 극대화됐다.

현재 영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주유 대란도 초대형 트럭을 운전할 수 있는 숙련된 운전자가 부족해서 벌어졌다. 영국의 트럭 운전기사 중에는 주로 동유럽에서 온 외국인 근로자가 많았다. 그런데 작년 1월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이후 상당수가 비자 문제로 영국을 떠났다. 여기에 코로나19 사태가 겹치면서 인력 부족이 가속화했다.

영국 정부는 운송 인력을 공급하기 위한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이번주부터 병력을 투입해 연료 수송을 지원하기로 했다. 외국인 운전사 임시비자 발급도 추진 중이다. 하지만 문제를 해결하기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많다. 루비 맥그리거 스미스 영국 상공회의소 회장은 “향후 몇 달간 공급망 혼돈은 계속될 것”이라고 했다.

FT는 주유소뿐만 아니라 곳곳에서 공급망 문제가 감지되고 있다고 전했다. 영국 의류 브랜드 넥스트와 미국 전자상거래업체 아마존, 대형 슈퍼마켓 체인 테스코 및 아이슬란드 등은 이미 고객들에게 연말 성수기를 앞두고 배송 지연이 발생할 수 있다고 안내하고 있다. 유통업계에선 블랙 프라이데이(11월 26일)와 사이버 먼데이(11월 29일), 성탄절(12월 25일) 등이 대목으로 꼽힌다. 영국 돈육협회는 정부에 임시비자 프로그램에 정육업계를 포함해달라고 촉구하고 있다. “성수기를 앞두고 슈퍼마켓 진열대가 텅텅 비어버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이런 가운데 생활비 부담이 늘어나고 있다는 불만도 나온다. 빈곤 가구에 대한 코로나19 지원 프로그램이 종료되고, 물가상승률은 4%를 향하고 있다. 실업급여 지급이 중단되고, 내년 봄에는 세금과 에너지 가격이 인상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박상용 기자 yourpenc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