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다 후미오 자민당 전 정무조사회장이 내달 초 일본 총리로 취임한다. 일본 집권 자민당은 29일 토쿄의 한 호텔에서 실시한 총재 선거에서 기시다를 27대 총재로 선출했다.

기시다는 결선 투표에서 257표를 획득해 고노 다로 행정개혁 담당상(170표)을 87표 차이로 눌렀다.

그는 이달 30일 총재 임기를 마치는 스가 요시히데 총리의 뒤를 잇는 자민당 당수로 취임하며 내달 4일 소집 예정인 임시 국회에서 제100대 일본 총리로 선출된다.

기시다는 보수·우파 성향이 강한 자민당 내에서는 온건파로 분류된다. 그는 아베 정권 시절 약 4년 8개월 동안 외무상으로 재직했다. 특히 2015년 한일 외교장관 합의의 당사자다.

이 때문에 기시다 정권의 기본적인 정책 방향은 아베 노선에서 크게 벗어내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우선 2012년 12월 출범한 제2차 아베 내각이 본격적으로 추진했지만 결실을 보지 못한 헌법 개정을 지속해서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제2차 아베 내각에서 최장수 외무상을 지내기도 한 기시다는 긴급사태 조항 신설과 자위대 명기 등을 골자로 자민당이 제시해 놓은 기존 개헌안이 자신의 임기 중에 실현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외교·안보 분야에선 미국과의 동맹 관계에 중점을 두는 자민당 보수정권의 기존 노선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미국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중국을 상대로 강경한 정책을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

그는 이번 선거 과정에서 중국을 염두에 둔 조치로 반도체 등의 중요 물자 확보 및 기술 유출 방지를 위한 경제안보추진법을 제정하고 담당 각료도 신설하겠다고 공약했다.

또 중국 등의 인권 침해 문제를 전담할 총리 보좌관 신설을 약속했다.

중국 해경국 선박에 의한 센카쿠(尖閣·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열도 주변 영해 침입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방안으로는 해상보안청법과 자위대법 개정 필요성을 역설하기도 했다.

북한과의 현안인 납치 문제를 놓고도 정상 간 만남을 통해 해결 방안을 모색한다는 아베·스가 정권의 노선을 따를 전망이다. 기시다는 이 문제와 관련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직접 만나는 것도 중요한 선택이라는 생각을 밝혔다.

최내 국내 현안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과 관련해선 한층 공세적인 정책을 펼 것으로 예상된다.

그는 코로나19 극복 방안으로 의료 난민 제로화 등을 내세우면서 건강위기관리청 창설안을 제시했다.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사업자 지원을 위해 수십조엔(수백조원) 규모의 경제대책도 공약했다.

경제 정책의 골격으로는 디플레이션 탈피에 초점을 맞춘 아베노믹스의 틀을 대체적으로 견지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아베노믹스의 3대 축인 대담한 금융완화 정책, 기동적인 재정정책 및 성장전략을 유지하겠다는 뜻을 밝혔기 때문이다.

다만 아베노믹스의 혜택이 대기업으로만 쏠리고 임금인상으로 이어지지 않은 점도 지적하면서 신자유주의로부터의 전환 방침을 시사해 개선 방안을 모색할 것으로 예상된다.

소득 배증을 위한 새로운 일본식 자본주의를 주장하면서 코로나19로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재분배와 격차 축소도 내세우고 있다.

그는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계기로 쟁점으로 떠 오른 탈원전 문제에 대해선 "세계 최고 수준의 안전기준을 바탕으로 원전 재가동을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탈원전과는 거리를 두는 정책 방향을 예고했다.

기시다는 일본이 국내적으로 당면한 중요 현안 중 하나인 모계 일왕 인정 문제에 대해선 "고려해선 안 된다"며 보수진영과 입장을 같이하고 있다.

한국, 중국 등 주변과의 외교 갈등 사안인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 문제에 대해선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는 총리가 된 후에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할지를 묻는 말에 "나라를 위해 고귀한 생명을 바친 분들에게 존숭의 뜻을 나타내는 것은 정치지도자로서 매우 중요하다"면서 총리가 되면 적절한 존숭의 방식을 생각하겠다고 말해 왔다.


최수진 한경닷컴 기자 naiv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