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연합의 기사당 대표조차 "사민당 숄츠 후보가 총리직 가장 유력"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소속된 독일 중도우파 성향의 기독민주당(CDU)·기독사회당(CSU) 연합 내부에서조차 자신들의 아르민 라셰트 총리 후보에 대한 반발이 커지고 있다.

지난 26일 치러진 연방하원 총선에서 기민·기사당연합이 사상 최악의 패배를 거뒀는데도 그가 총리직 입후보를 고수하면서 연정협상에 나서겠다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악 패배' 메르켈 후계 라셰트, 총리직 고수에 내부서도 역풍
라셰트 후보는 총선 다음날인 27일(현지시간)에도 당내협의회에서 "어떤 정당도 이번 선거 결과에 따라 뚜렷하게 연립정부 구성을 위임받았다고 볼 수 없다.

눈높이를 맞춰 연정협상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기민·기사당 주도하에 14.8%를 득표한 녹색당, 11.5%를 득표한 친기업 성향의 자유민주당(FDP)과 정당상징색에 따라 이른바 자메이카 국기색(기민당-검정·녹색당-녹색·자민당-노랑) 연정을 성사시켜 총리가 되겠다는 시나리오다.

기민·기사당 연합은 이번 총선에서 24.1%를 득표하는 데 그쳐 25.7%를 득표한 사회민주당(SPD)에 1.6%포인트 차로 근소하게 패배했지만, 득표율 자체는 1949년 연방하원 총선이 시작된 이후 최악의 수준이다.

한때 50%에 육박했던 기민·기사당 연합의 득표율이 총선에서 30% 아래로 떨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기민·기사당 연합은 특히 구동독 지역에서 크게 표를 잃으면서 작센주와 튀링엔주에서 극우 성향의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제1당이 되는 사태를 낳았다.

라셰트 후보의 이런 계획은 사민당은 물론 기민·기사당 내부에서조차 거센 반발에 직면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의 정치적 생존일 뿐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최악 패배' 메르켈 후계 라셰트, 총리직 고수에 내부서도 역풍
마르쿠스 죄더 기사당대표 겸 바이에른주지사는 28일 기자들에게 "총리가 될 가장 절호의 기회는 올라프 숄츠 사민당 총리 후보에게 있다"면서 숄츠 후보에게 사민당의 총선 승리에 대한 축하 인사를 보냈다.

그는 이날 기사당 내부 회의에서 "이미 사민당 주도의 '신호등'(사민당-빨강·자민당-노랑·녹색당-초록) 연정으로 사태가 빠르게 전개되고 있다"면서 "그러면 자메이카 연정은 협상조차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ntv가 전했다.

베른트 알투스만 니더작센주 기민당 대표는 프랑크푸르터알게마이네차이퉁(FAZ)에 "기민당이 지푸라기라도 잡으려 한다는 인상을 불러일으켜서는 안 된다"면서 "유권자들의 뜻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기민당은 이기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명백하게 졌다"고 강조했다.

폴커 부피어 헤센주지사(기민당)는 "우리는 연립정부 구성을 책임질 아무런 권한이 없다"고 말했다.

틸만 쿠반 기민당 청년연합 회장도 "우리는 선거에서 졌다"고 동의했다.

미하엘 크레취머 작센주지사(기민당)는 "지각변동이 일어나 기민당이 더는 첫 번째 선택지가 아니라는 유권자들의 명확한 뜻이 드러났다"면서 "기민당은 이제 지난 수개월 내지 수년간의 잘못을 돌아봐야 할 때"라고 말했다.

말루 드라이어 라인란트팔츠 주지사(사민당)는 쥐트도이체차이퉁(SZ)에 "옛날 같으면 이런 패배 후 총리 후보가 사퇴했을 텐데, 라셰트 후보는 자기가 연립정부를 이끌 임무를 부여받았고 주장하고 있다"면서 "현실감각을 잃은 것 같다"고 비판했다.

이런 안팎의 비판에 대해 라셰트 후보는 일부 잘못을 시인했지만, 단결이 필요하다고 말했다고 SZ는 전했다.

'최악 패배' 메르켈 후계 라셰트, 총리직 고수에 내부서도 역풍
한편 라셰트 후보는 총선이 치러진 26일 투표소에서 한 표를 행사하면서 투표용지를 거꾸로 접어 자신이 어디에 투표했는지 드러내는 실수를 저질러 구설에 올랐다.

투표용지를 펼쳐서 투표함에 넣는 것은 비밀투표의 원칙에 어긋나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

독일 선거관리위원회 규정에 따르면 투표자는 투표용지를 자신이 어디에 투표했는지 알 수 없게 접어야 한다고 돼 있다.

아울러 만약 잘못 접은 사례가 발견되는 경우 감독관이 제지하게 돼 있다.

단 제지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라셰트 후보의 표는 유효하다고 선관위는 결론내렸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