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데마에칸 홈페이지
사진=데마에칸 홈페이지
한국과 달리 일본에서는 배달음식 시장이 성장하지 못했다. 관련 시장 규모가 한국의 4분의 1정도다. 지난해 한국 배달음식 시장 규모는 23조원에 달하지만 일본은 6조5700억원 수준이다. 일본이 한국보다 약 2.5배 많은 인구를 갖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격차는 더욱 크게 느껴진다.

하지만 배달음식 황무지에서도 피는 꽃이 있었다. 도쿄증시에 상장된 데마에칸(出前館·종목번호 2484)이다. 글로벌 배달 서비스 우버이츠와 함께 일본 배달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일본판 '배달의민족'으로도 불린다.

배달시장 불모지서 네이버가 발견한 '가능성'


1999년 설립된 데마에칸은 일본어로 '나의 앞'을 의미하는 ‘데마에’(出前)와 '관'을 뜻하는 ‘칸’(館)의 합성어다. 말 그대로 내 앞까지 배달해준다는 의미다.
사진=데마에칸 어플
사진=데마에칸 어플
데마에칸은 2004년 야후 배달주문 서비스와 업무 제휴를 시작한 뒤 지금까지 일본 음식배달 분야의 1인자로 평가받았다. 2000년 일본 최초로 인터넷 배달 주문을 개시한 회사이기도 하다. 2017년에는 자체 배달이 되지 않는 음식점을 대신하는 배달 대행 시스템 '셰어링 딜리버리'도 시작했다.

데마에칸이 한국의 주목을 받게 된 계기는 네이버가 투자하면서다. 2016년 네이버는 자회사 라인을 통해 430억엔(약 4610억원)을 들여 데마에칸의 지분 20%를 사들였다. 지난해 8월에는 300억엔(약 3220억원)을 추가 투자하며 데마에칸의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네이버의 투자회사 'J코퍼레이션'과 라인이 각각 150억엔씩 투입했다.

올해에도 네이버의 데마에칸 투자는 멈추지 않았다. 지난 15일 데마에칸이 도쿄증권거래소에 제출한 서류에 따르면 데마에칸은 네이버와 네이버-소프트뱅크의 합작사 Z홀딩스 등을 대상으로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실시한다. Z홀딩스는 라인과 야후재팬을 거느리고 있다.

데마에칸의 이번 유상증자는 총 800억엔 규모다. 네이버는 180억엔(약 2000억원)을, Z홀딩스는 317억엔(약 3400억원)을 투자한다. 남은 303억엔은 외국인 투자자들로부터 조달한다. 네이버는 이번 투자를 통해 데마에칸 지분 8.3%를 추가로 확보하게 된다.

Z홀딩스가 네이버와 소프트뱅크가 지분 절반씩을 투자해 설립한 A홀딩스의 자회사인 것을 감안하면 데마에칸에 대한 네이버의 지배력은 더욱 강화되는 셈이다. 네이버는 일본 배달시장의 성장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적극적으로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지난해 메신저 플랫폼 라인과 데마에칸 사용자 계정 통합 작업도 이뤄졌다. 이에 따라 데마에칸은 라인 이용자 8400만 명을 잠재 고객으로 확보할 수 있게 됐다.

데마에칸은 이번에 유치한 투자금 800억엔 중 650억엔은 마케팅, 100억엔은 연구개발(R&D), 50억엔은 배달원 증원 등에 투입할 계획이다.

데마에칸 주가 저점 찍고 '우상향' 중


데마에칸이 투자 유치에 나선 것은 시장점유율을 높이기 위한 전략으로 해석된다. 오랫동안 일본 음식배달 시장의 1인자였던 데마에칸의 입지는 2016년 우버이츠가 일본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데마에칸은 사용자환경(UI)이 세련되지 못하고, 배달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면서 소비자들의 불만이 속출했다. 데마에칸 관계자는 "앞으로 음식배달 사업을 주도할 수 있는 위치에 있으려면 시장점유율 확대와 성장을 위한 투자가 필수"라고 닛케이비즈니스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사진=데마에칸 주가
사진=데마에칸 주가
최근 데마에칸의 주가는 우상향 중이다. 지난 8월 12일(1227엔) 연중 저점을 찍고 꾸준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이번 투자 유치 발표 뒤 데마에칸의 주가는 크게 급등락하며 출렁이기도 했다. 지난해 영업손실이 약 38억엔에 달하는 등 적자가 이어지는 게 악재다. 하지만 데마에칸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목소리도 많다. 일본 배달 시장이 이제 막 개화하고 있어 성장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데마에칸의 활성 이용자 수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2019년 300만 명 수준이던 데마에칸의 연간 활성 이용자 수는 지난해 400만 명으로, 현재는 650만 명 수준으로 늘어났다. 올해 4월 기준 가맹점 수는 7만 곳을 돌파했다. 2010년 1만 곳에서 7배 늘었다.

코로나19 사태 등으로 일본에서 배달 수요가 늘어난 것도 데마에칸에 호재다. 일본이 긴급사태 선언 등으로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에 나서자 배달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일본의 소비세율 개편이 테이크아웃, 배달음식에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도 긍정적인 전망을 더한다. 일본은 2019년 10월 소비세율을 8%에서 10%로 높였는데 테이크아웃, 배달음식 등은 기존 세율인 8%를 적용하고 있다. 매장 안에서 식사를 하는 것보다 배달음식을 주문해 먹으면 세금을 덜 낸다는 뜻이다.

일본능률협회종합연구소는 2019년 1700억엔 수준이었던 일본 음식배달 시장 규모가 2022년 3300억엔, 2025년 4100억엔까지 커질 것으로 예상했다.

박주연 기자 grumpy_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