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고위관리 "인정 아주 먼일"…테러내각·인권 등 걸림돌
"세계-아프간 교류 불가피"…결국 대이란 모델로 갈 가능성
미, 탈레반 정권 인정 않은 채 암묵적으로 실체 받아들일 듯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 탈레반의 새 정부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다만, 아프간 새 정부를 승인하지 않더라도 미국인 철수 등의 현안에서는 협력하며 존재 자체에 대해선 인정하는 방향성으로 흐를 것이라는 전망이다.

11일(현지시간)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에 따르면 미 행정부 고위관계자는 탈레반 정부의 인정 문제에 대해 "현실적으로 활발하고 현재 진행 중인 토론이 아니다"라며 바이든 대통령이 탈레반을 인정하는 것은 "아주 먼일"이라고 말했다.

미 행정부 관리들은 현실적으로 아프간에 남은 자국민과 현지 협력자들을 대피시키는 데 집중하고 있어서 탈레반 정권에 대한 인정 문제를 논의할 여지가 좁다고 전하기도 했다.

공식적으로는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이 최근 "탈레반이 국제적인 합법성과 지원을 추구한다고 말하는데, 전적으로 탈레반이 무엇을 하느냐에 (합법성 인정 여부가) 달려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이는 탈레반의 향후 통치 방식을 놓고 평가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탈레반 정부에 대한 인정 여부 논의에 수년이 걸릴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특히 탈레반 정부를 인정할 경우 미 의회 의원들의 강력한 반발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탈레반의 과도 정부 내각 명단 발표 이후 탈레반이 본색을 드러냈다는 여론이 미국에서 일고 있다.

전원이 탈레반 핵심 강경파로 구성된데다, 쿠바 관타나모 수용소 출신과 미국 연방수사국(FBI) 수배자도 중용됐기 때문이다.

미, 탈레반 정권 인정 않은 채 암묵적으로 실체 받아들일 듯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측근이었던 린지 그레이엄 공화당 상원의원은 탈레반의 내각 인사 발표에 대해 "폭력배와 도살자 명단"이라고 비판했다.

당장 아프간 전쟁의 실패를 놓고 국내 여론이 험악해진 것도 미 행정부가 아프간 정부를 인정하기 어려운 배경이다.

탈레반을 인정했다가 자국 내 여론이 더 악화하면 '인권'을 강조하는 정권의 대외정책 명분에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

국제법과 달러 중심의 국제 금융시스템에 탈레반을 받아들이는 것은 미국에 부담이기도 하다.

다만, 전직 미 국무부 법무담당이었던 스콧 앤더슨은 "아프간 정부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면서 "세계는 새 아프간 정부와 상호작용하는 것을 피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언젠가 어떤 실체가 권리나 의무 행사에서 아프간을 대변할 능력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이 아프간에서 활동하는 이슬람국가(IS) 등 테러 세력들을 견제하는 데도 탈레반이 필요할 수 있다.

미, 탈레반 정권 인정 않은 채 암묵적으로 실체 받아들일 듯
더구나 중국과 러시아가 중앙아시아의 전략적 요충지인 아프간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는 모습을 속절없이 지켜봐야 한다는 점에서 마냥 탈레반의 실체를 부인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미국이 이미 베네수엘라에서 니콜라스 마두로 정부를 부정하고 야권 지도자인 후안 과이도를 베네수엘라 지도자로 인정했으나, 러시아 등이 마두로 정권을 지지하면서 실질적으로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 바 있다.

미국이 결국 마두로 정부를 상대할 수밖에 없게 된 셈이다.

이 때문에 미국이 탈레반 정권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더라도 실질적인 관계를 이어가는 방식을 채택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의 대(對)이란 외교가 대표적인 사례로 거론된다.

1979년 이란 혁명으로 이슬람 원리주의 정권이 들어선 후 미국은 자국민 인질 석방을 위한 협상과 양국 사이 분쟁 해결을 위한 재판을 진행하면서 상대 존재를 사실상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됐다.

이후 미국은 이란과 공식적으로 외교관계를 맺지 않으면서도 이란 핵 프로그램 관련 협상을 비롯한 여러 협상을 벌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