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석의 월스트리트나우] 시진핑의 몽니, 미국 인플레 더 높인다
[김현석의 월스트리트나우] 시진핑의 몽니, 미국 인플레 더 높인다
역사적인 9.11 사태 20주년을 하루 앞둔 10일(현지시간) 뉴욕 증시에선 지속하는 인플레이션, 풀리지 않는 미·중 관계, 증세와 부채한도 등 정치적 위험에 애플의 반경쟁 이슈까지 부정적 뉴스가 줄줄이 쏟아졌습니다.

나흘 연속 하락했던 주요 지수는 장 초반 반등을 시도했으나 결국 실패했습니다. 0.5~0.6% 수준에서 상승 출발한 주요 지수는 대장주 애플이 폭락하면서 시간이 갈수록 아래쪽으로 향했습니다. 결국, 다우는 0.78%, S&P500 지수는 0.77%, 나스닥은 0.87% 떨어진 채 거래를 마감했습니다.

오전 8시 30분에 나온 8월 생산자 물가지수(PPI)는 인플레이션 압력이 강함을 재확인시켜 줬습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3% 상승해 9개월 연속 오르며 기존 기록이던 지난 7월 7.8%를 넘어섰습니다. 2010년 11월 통계 산출을 시작한 이래 가장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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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월보다 한달 만에 0.7% 올랐습니다. 7월 1.0% 상승보다는 낮아졌지만, 시장 전망치인 0.6%를 웃돌았습니다. 또 식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 PPI는 전월 대비 0.6% 올랐습니다. 이것도 전달의 1.0%보다는 하락했지만 예상치 0.5%보다는 높았습니다.

물가 상승은 업종 전반에 걸쳐 나타났습니다. 최종 수요 서비스 가격은 8월에 0.7% 상승했는데 증가분의 3분의 2가 무역에서 발생했습니다. 또 물류와 창고 비용이 2.8% 급등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최종 수요 상품 가격은 1.0% 올랐습니다. 이 중 4분의 1이 식품 가격 상승 탓입니다. 육류가 8.5%, 특히 닭 가공품이 11% 급등했습니다. 또 주거용 천연가스, 산업용 화학제품, 자동차, 제철 제품 등도 상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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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하면 공급망 혼란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이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 소식이 나온 뒤 채권시장에서 10년물 국채 수익률은 전날 1.300%에서 1.340%까지 올랐습니다. 찰스 슈왑의 캐시 존스 금리 전략가는 "식품 물가가 주도하면서 도매 물가가 급등했다. 근원 물가는 전달 대비해 상승 폭은 줄었지만, 인플레이션 압력이 완화될 것이란 애초 예상은 데이터 어디에도 찾을 수 없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기업들이 높아진 도매 물가를 소비자에게 전가하지 못하면 이윤이 감소하게 됩니다. 지난 2분기 기록적인 13% 마진을 기록한 S&P 500 기업들은 이런 수준을 지켜낼 수 있을까요? 10월 중순 시작되는 3분기 어닝시즌에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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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용을 잘 전가하고 있는지는 다음 주 화요일 발표될 8월 소비자물가지수(CPI)에서 드러납니다. 만약 이게 치솟는다면 미 중앙은행(Fed)에게는 서둘러 테이퍼링을 하고 금리 인상 채비를 갖춰야 하는 이유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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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크오브아메리카는 어제 보고서를 내고 "거시경제의 상황은 높은 인플레이션, 매파적 중앙은행, 그리고 약간의 성장이다. 이는 스태그플레이션을 의미한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세계의 공장’ 중국에서도 PPI가 치솟고 있습니다. 9일 발표된 중국의 8월 PPI는 9.5% 상승해 전월의 9%를 넘어섰습니다. 13년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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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대미 최대 수출국입니다. 올해 들어 7월까지 미국은 중국으로부터 2700억 달러 규모의 상품을 수입했습니다. 이런 추세라면 올해 4630억 달러 규모를 수입하게 됩니다. 2020년(4343억 달러)뿐 아니라 2019년(4507억 달러)보다도 많습니다.

중국의 높은 PPI는 시간이 흐르면 수출품 가격에 반영될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이 중국에서 오는 인플레이션 압력을 완화하는 방법이 하나 있기는 합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대거 인상한 대중 관세를 낮추면 됩니다.

전날 조 바이든 대통령은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과 90분간 통화를 했습니다. 지난 2월에 이어 7개월 만에 이뤄진 것으로 미국 측 요청으로 성사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미 언론들은 미·중 갈등이 격화하는 가운데 양국 장관, 부장관급의 접촉에서 별다른 성과가 없자 본인이 직접 나선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이날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서로 존경심을 보이며 솔직했다"라고 말했습니다. 외교 용어로 솔직했다는 건 '이견이 많았고 합의는 없었다'라는 뜻입니다. 월가 관계자는 "인심을 쓰듯 관세를 내려주면서 중국으로부터 뭔가 받아내려고 했으나 제대로 되지 않은 것 같다"라고 말했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경제와 기후변화, 인권 문제 등을 제기했습니다. 하지만 시 주석은 중국의 핵심이익을 미국이 존중하라고 촉구했습니다. 월가 관계자는 "바이든 대통령은 경제 등 구체적 사안을 논의하길 원했지만 시 주석은 중국의 핵심이익을 존중하지 않으면 논의하지 않겠다고 자른 것"이라고 해석했습니다.

일부에선 양국 정상이 대화한 것만 해도 긍정적이라는 평가를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평가는 금세 뒤집혔습니다.

이날 블룸버그통신은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 보조금과 이 보조금이 미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할 수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월가 관계자는 "바이든 대통령이 유화책을 던졌는데 시 주석이 버티자 다시 강경책을 집어든 것"이라며 "결국 협상이 제대로 안 됐다는 얘기"라고 지적했습니다.

상승세를 유지하던 주요 지수들이 내림세로 꺾어진 게 그즈음이었습니다. 투자자들이 미·중 관계가 금세 풀릴 게 아닌 걸 실감한 것입니다.

월가 관계자는 "이날 상황을 보면 미·중 관계는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이 중국에 전화를 건 건 본인이 급하기 때문입니다. 엄청난 부양책을 퍼부었는데, 델타 변이로 인해 경기 회복은 더뎌지고 대신 인플레이션만 치솟고 있습니다. 게다가 아프가니스탄 철수 문제로 지지율은 폭락했습니다. 이대로라면 내년 11월 중간선거에서 의회를 공화당에 빼앗길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서 중국에 당근(관세 인하)을 주는 척하면서 경제 실리를 챙기려 했는데 실패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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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주석은 급할 게 없어 보입니다. 시 주석은 내년 10월로 예상되는 제20차 당대회에서 3기 집권을 노리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공동 부유’라는 강령을 앞세워 부자 기업 등을 누르고 서민과 중산층 지지 확보에 나섰습니다. 미국에 맞서는 '항미'(抗美)도 국수주의적인 중국 내부 여론을 결집시키는 데 좋은 재료가 될 수 있습니다. 시주석은 이미 경제적 어려움을 각오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경제적 불만은 ‘공동 부유’를 통한 빈부 격차 해소, 부패 척결, 사교육 금지, 기업 통제 등으로 해결하려 하려는 듯합니다.

이는 미국 경제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월가 관계자는 "시진핑이 들고나온 '공동 부유'는 효율적 시장경제가 아니라 공산당이 맘대로 하겠다는 것”이라며 “결국 경제적 효율성을 저해할 수밖에 없으며, 이는 또 다른 물가 상승 요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워싱턴 DC의 상황도 복잡합니다. 민주당은 다음 주 3조5000억 달러 규모의 자체 사회복지성 예산안의 구체적 내용을 확정 지으려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당연히 증세가 포함됩니다. 법인세를 22%에서 28%로 올리는 방안(월가는 25% 이하로 예상)뿐 아니라 자사주 매입에 2%의 세금을 매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최고경영진의 과다한 급여에 대한 세금 등도 추진되고 있지요. 계속 흘러나올 증세 소식은 투자심리를 압박할 것입니다.

이날 민주당은 오는 20일 임시지출법안을 통과시켜 정부폐쇄 위험을 막을 계획을 밝혔습니다. 공화당과 협조하지 않고 단독으로 모든 걸 처리하겠다는 뜻을 명확히 한 것입니다. 인프라 법안, 예산안, 부채한도 상향 등을 둘러싼 양당간 갈등이 더 치열해질 것이란 얘기입니다.

애플은 이날 3.3% 폭락했습니다. 에픽게임스가 제기한 소송에서 캘리포니아 오클랜드연방법원이 “앱스토어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애플리케이션 구매 비용을 결제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은 반(反)경쟁적 조치”라고 판결한 여파입니다. 에픽의 주장 10개 중 9개는 기각했지만 "인앱결제 금지는 위법"이라는 주장은 받아들인 것입니다. 판사는 “애플이 독점 기업은 아니다"라고 했지만, 애플은 앞으로 앱 개발자가 자기 앱에 다른 결제 옵션을 넣는 걸 막을 수 없게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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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애플의 인앱결제 등 앱스토어를 통한 매출은 이번 회계연도에 작년보다 23% 증가한 216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물론 판결은 아직 확정된 건 아닙니다. 애플과 에픽게임스 모두 항소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