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호평에도 판세 못 바꿔…일본 권력 중추서 퇴출 수순
총선 앞 구심력 약화…킹메이커 니카이 '내치기' 시도·역부족
코로나 폭증에 무너진 스가…지지율 급락에 당내 반발까지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가 집권 자민당 총재 선거 불출마 의사를 표명하면서 스가 정권은 발족한 지 약 1년 만에 막을 내리게 될 것으로 보인다.

스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에 관한 유권자의 불만이 높아지고 총선을 앞두고 정치적 영향력이 약해지면서 더 버티지 못하고 권력의 중추에서 퇴출당하는 양상이다.

그가 임기 연장을 위한 첫 관문인 자민당 총재 선거 출마 포기를 결정한 기본 원인은 코로나19 감염 확산과 급격한 여론 악화로 볼 수 있다.

스가 내각은 작년 9월 16일 출범 직후 실시된 주요 언론의 여론조사에서 70%가 넘는 지지율을 기록하며 역대 내각 중 인기 3위를 달리는 등 기대를 모았다.

코로나 폭증에 무너진 스가…지지율 급락에 당내 반발까지
하지만 코로나19 확진자가 최근 한 달 만에 50만 명 넘게 늘어날 정도로 감염이 폭발적으로 확산한 가운데 지지율이 곤두박질쳤다.

급기야 일부 언론의 조사에서는 30% 선이 붕괴하기도 했다.

스가는 수시로 열린 기자회견에서 매번 질문과 동떨어진 답변을 반복했고 이런 모습은 그의 지도력에 대한 유권자의 의문을 키우는 재료였다.

백신의 효과를 과신한 스가는 전문가의 경고를 무시하고 도쿄 올림픽을 강행했지만, 판세를 바꾸지 못했다.

유권자들이 '올림픽을 개최하기를 잘했다'고 평가했으나 이런 판단이 스가 내각에 대한 지지로 이어지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코로나 폭증에 무너진 스가…지지율 급락에 당내 반발까지
중의원 임기 만료일(10월 21일)이 다가오는 것은 스가의 구심력 약화를 가속하는 요소가 됐다.

총선에서 자민당 의석이 기존보다 수십 석 줄어들고 의회 내 단독 과반을 확보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정세 조사 결과가 나오면서 당내 동요가 확산한 것이다.

애초 스가는 무투표로 총재를 재선을 달성하고 이를 토대로 총선을 실시한 후 총리 임기를 연장하는 시나리오를 원했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와 거리가 먼 상황이 펼쳐졌다.

내각 지지율이 폭락하면서 '스가가 총재를 계속 맡으면 총선 때 자민당이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분석이 대두했기 때문이다.

코로나 폭증에 무너진 스가…지지율 급락에 당내 반발까지
스가 총리 취임 후 실시된 여야 대결 구도의 선거가 8차례 있었는데 자민당이 사실상 전패하면서 이런 분석에 더욱 무게가 실렸다.

지역구 기반이 취약한 초·재선 의원들은 이번 선거에서 금배지를 상실할 수도 있다며 전전긍긍하는 상황이었다.

이런 분위기를 감지한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전 정조회장,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전 총무상이 총재 선거 출사표를 던지면서 스가 대세론은 물안개처럼 사라졌다.

코로나 폭증에 무너진 스가…지지율 급락에 당내 반발까지
위기를 직감한 스가는 마지막 반전을 꾀했다.

우선 앞서 총재 선거 의향을 밝혔던 시모무라 하쿠분(下村博文) 자민당 정조회장을 설득해 출마를 단념시켰다.

1년 전 자신이 총리가 될 수 있도록 킹메이커 역할을 한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 자민당 간사장까지 내치기로 했다.

코로나 폭증에 무너진 스가…지지율 급락에 당내 반발까지
니카이가 자기 파벌 중심으로 당을 운영하는 것에 대한 불만 등을 고려해 당 인사 때 간사장을 교체하기로 한 것이다.

아울러 소폭 개각을 하는 방안까지 검토했다.

총재 선거를 앞두고 '쇄신'을 부각해 정치적 구심력을 회복하려는 의도였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지도력 부족으로 혼란을 부른 당사자인 스가가 최근에 보인 일련의 움직임에 대해 '자기의 정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무리수를 둔다'는 비판의 목소리까지 나왔다.

상황을 뒤집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을 실감한 스가에게 남은 마지막 선택지는 스스로 물러서는 것인 셈이다.

코로나 폭증에 무너진 스가…지지율 급락에 당내 반발까지
하지만 스가는 여론의 불만이나 당내 역학 구도 등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코로나19 대책에 전념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자민당 총재 선거에는 출마하지 않는다"고 3일 기자들에게 설명했다.

향후 상황에 대한 여지를 남긴 것으로도 풀이된다.

스가의 선택에 누가 결정적 영향을 미쳤는지에도 눈길이 쏠린다.

자민당을 배후에서 움직이는 주요 인물로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와 아베의 맹우인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 겸 재무상 등이 꼽힌다.

이들은 스가의 재선을 개인적으로는 지지한다는 입장을 앞서 내비친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후 태도 변화가 있었는지가 주목된다.

간사장 교체 계획을 못마땅하게 생각한 니카이가 막후에서 '스가 끌어내리기'를 추인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의원 내각제인 일본에서 다수당 총재가 되는 것은 총리가 되기 위한 사실상의 필요조건이다.

이달 말 자민당 총재 임기가 끝나는 스가가 총재 선거 출마를 포기하면 그가 총리직을 유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할 전망이다.

스가는 일본 총리가 권한 중 가장 핵심으로 꼽히는 중의원 해산도 못 해보고 총선을 한 번도 지휘하지 못한 채 권좌에서 물러날 가능성이 매우 커졌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