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일본'에 화들짝…1000억 들여 한국에 공장짓는 日 기업 [정영효의 일본산업 분석]
일본의 화학 대기업 스미토모화학이 100억엔(약 1054억원) 이상을 투자해 한국에서 핵심 반도체 소재인 감광재(포토레지스트)를 직접 생산한다. 일본 정부가 2019년 반도체 핵심소재의 수출을 규제한 이후 관련 일본 기업의 한국 투자로는 최대 규모가 될 전망이다.

스미토모화학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의 반도체 대기업에 포토레지스트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 100억엔 이상을 들여 한국에 새 공장을 건설한다고 1일 발표했다. 이달 착공해 2024년부터 생산을 시작할 계획이다.

한국의 새 공장에서는 불화아르곤(ArF) 포토레지스트를 생산할 계획이다. 불화아르곤 포토레지스트는 반도체 웨이퍼(기판) 회로를 미세하게 그릴 때 쓰이는 사용되는 첨단 소재다. 스미토모화학은 지금까지 오사카공장에서만 불화아르곤 포토레지스트를 생산해왔다.

한국의 새 공장 건설과 기존 오사카공장의 증설이 마무리되는 2024년 스미토모화학의 불화아르곤 포토레지스트 생산능력은 2019년의 2.5배로 늘어날 전망이다. 스미토모화학은 포토레지스트 시장 세계 4위 업체다.

스미토모화학이 해외에서 처음으로 불화아르곤 포토레지스트를 직접 생산하기로 결정한 것은 한국 반도체 대기업들이 분산 생산을 요청했기 때문이라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전했다. 한국 기업들은 불화아르곤 포토레지스트의 90%를 수입에 의존한다. 5세대 이동통신(5G)용 스마트폰 보급과 데이터센터 수요가 늘어나면서 불화아르곤 포토레지스트 시장은 매년 10% 이상 성장할 것으로 기대된다.

일본이 2019년 7월부터 불화수소와 극자외선(EUV) 포토레지스트, 폴리이미드 등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소재의 한국 수출을 규제하고 있다. 불화아르곤 포토레지스트는 일본의 수출규제 품목은 아니라는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하지만 일본의 수출규제가 미친 영향을 무시하기 어렵다는게 업계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 반도체 기업이 수출규제 이후 반도체 소재의 안정적인 조달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기업들이 예상보다 빨리 반도체 소재 국산화에 나선 것도 스미토모화학이 한국에 대규모 투자를 결정한 배경으로 관측된다.

작년 6월 SK그룹의 소재 전문 계열사 SK머티리얼즈는 초고순도(순도 99.999%) 불화수소(HF) 가스 양산에 성공했다. 또 400억원을 투자해 2022년부터 연간 5만 갤런 규모의 불화아르곤 포토레지스트 양산을 목표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SK머티리얼즈는 불화아르곤 포토레지스 사업에 진출하기 위해 작년 2월 금호석유화학의 전자소재사업을 400억 원에 인수했다.

한국 기업들의 '탈 일본' 움직임에 놀란 다른 일본 기업들도 한국 투자를 늘리고 있다. 세계 2위 포토레지스트 생산업체인 TOK는 수십억엔을 추가로 투자해 인천 송도 공장의 생산능력을 2018년보다 2배로 늘렸다.

불화수소 생산기업인 다이킨공업도 약 40억엔을 들여 충남 당진에 불화수소 공장을 신설하기로 했다. 반대로 삼성전자에 불화수소를 공급하던 스텔라케미파와 모리타케미칼은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 조치 이후 수출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매출이 크게 감소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