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HS마킷 "올해 세계 신차판매 SUV가 40%로 첫 선두"
20년째 소득 5% 감소한 일본이 '세단몰락' 주도
'젊어서는 카롤라, 언젠가는 크라운'은 옛말
미래자동차는 '달리는 거실'..엔진 강점 日에는 위기
니혼게이자이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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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0여년간 세계 자동차 시장의 주력 차종이었던 세단이 올해 처음으로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에 자리를 내 줄 전망이다.

30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시장 조사업체 IHS마킷은 올해 세계 신차 판매에서 SUV 비중이 40%로 세단을 처음 근소하게 앞설 것으로 예상했다. 집계를 시작한 2000년만 해도 세단 비중은 60%로 SUV의 6배에 달했다.
◆자동차의 기준, 과시에서 실용성으로
고급세단을 출세의 상징으로 여겼던 소비자들의 가치관이 실용성을 중시하는 쪽으로 바뀌면서 세단의 시대가 저물었다고 이 신문은 분석했다. 일본의 1인당 자동차 보급대수는 2006년 1.112대를 정점으로 하락하고 있다.

2019년 직장인의 평균 연간수입이 436만엔(약 4631만원)으로 20년새 5% 감소한 탓이다. 소득이 줄자 신분상승 욕구가 구매의 주요 동기 가운데 하나인 세단의 인기도 시들해질 수 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일본은 주요 시장 가운데 '세단의 몰락'이 가장 극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1960~70년대 고도성장기부터 1980년대 버블(거품)경제 시대에 걸쳐 시대를 풍미한 세단이 하나둘 사라지고 있다. 닛산자동차는 대표 세단인 스카이라인의 개량모델을 7년째 내놓지 않고 있다. 도요타 역시 크라운의 생산종료를 검토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이미 크라운 SUV를 발표했다.

세단은 전방의 엔진공간과 중앙의 승차공간, 후방의 트렁크가 각각 독립된 설계가 대부분이다. 중심이 낮아 고속주행에 적합하다. 자동차 메이커들은 세단의 서열을 확실하게 나누는 마케팅 전략을 써왔다.

이 때문에 일본인들 사이에서는 '젊어서는 카롤라(도요타의 중소형 세단), 출세해서 코로나(중형 세단), 언젠가는 크라운(고급 세단)'이라는 '마이카 인생계획표'가 자리잡고 있었다. 1980년대는 흰색 4도어 세단이 '하이소카('하이 소사이어티 카'의 일본식 줄임말)'로 불티나게 팔렸다.

버블이 최고조에 달한 1988년에는 닛산이 대당 500만엔이 넘는 최고급 세단 '시마'를 내놨다. '택시를 잡을 때는 1만엔(약 10만원)짜리 지폐를 흔든다'고 할 정도로 흥청망청하던 당시 일본 사회의 분위기를 지금도 '시마현상'이라고 묘사한다.

세단이 몰락하고 SUV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시기도 일본의 버블 붕괴와 겹친다. 대기업이 대규모 구조조정에 나서면서 '취업빙하기'가 불어닥친 1990년대 중반 도요타의 대표 SUV 'RAV4'와 혼다의 미니밴 '오딧세이'가 등장했다.

한 자동차 딜러는 "어딘가 상용차 같았던 SUV와 미니밴의 내장이 점점 세련되지고 있다"며 "젊은 고객일 수록 세단에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세단에서 SUV로 교체하려는 한 고객은 "짐싣는 공간이 넓고 아이들도 차안에서 서서 걸어다닐 수 있는 차고가 장점"이라고 말했다.

과시보다 실용성이 자동차를 고르는 기준이 되면서 공유차와 정액요금제도 인기를 끌고 있다. 시장 조사업체 후지경제는 2030년 일본의 공유차 시장규모가 4300억엔으로 2019년의 9배에 달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자동차를 소유하던 시대에서 이용하는 시대로 변하는데 따른 시장의 변화라고 후지경제는 설명했다.

렌터카 시장에서는 메르세데스벤츠 등 고급차가 늘고 있다. 도요타가 새로 내놓은 정액요금 서비스 '킨토'에는 지난 한 해 동안만 신규 회원이 1만명을 넘었다.
도요타가 새로 내놓은 정액요금 서비스 '킨토'에는 지난 한 해 동안만 신규 회원이 1만명을 넘었다. (자료 : 니혼게이자이신문)

도요타가 새로 내놓은 정액요금 서비스 '킨토'에는 지난 한 해 동안만 신규 회원이 1만명을 넘었다. (자료 : 니혼게이자이신문)

◆CASE시대 日 경쟁력 먹구름
CASE(연결성, 자율주행, 공유서비스, 전동화)로 대표되는 미래차 개발 경쟁도 세단을 시대의 뒷편으로 몰아내고 있다. 자동차의 궁극적인 지향점이 주행성능에서 '달리는 거실'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파나소닉이 2019년 도쿄모터쇼에 선보인 콘셉트카 스페이스L은 아예 핸들과 운전석이 없다. 탑승자는 거실 같은 차내에서 대형 디스플레이 화면을 통해 쇼핑을 즐길 수 있다.

자동차의 핵심 경쟁력이 엔진에서 CASE로 넘어가는 시대변화는 일본 자동차 업계에 위기다. 일본 자동차 업체들은 엔진 경쟁력을 무기로 세계 시장을 주도해 왔기 때문이다. 혼다는 1972년 세계 최초로 미국의 엄격한 배출가스 규제를 통과한 CVCC엔진을 개발했다. 1980년대에는 모터스포츠 F1을 연이어 제패했다.

도요타는 1997년 세계 최초의 하이브리드차 프리우스를 출시했다. 프리우스는 '21세기에 도착했습니다'라는 광고 문구대로 시대를 선도했지만 현재 유럽과 미국은 친환경차량에서 하이브리드차를 제외하고 있다.

CASE 가운데 세계 최고의 모터 기술력을 가진 일본전산을 제외하면 일본 기업이 주도하는 시장은 없다. 자율주행과 관련 소프트웨어는 미국 구글과 애플 등이 과점하고 있다. 위탁생산은 대만 혼하이정밀, 배터리는 중국 CATL 등이 주도권을 쥐고 있다.

자동차 산업은 제조강국 일본의 대표 산업이다. 일본자동차공업회에 따르면 자동차 관련 시장에서 일하는 일본인은 542만명이다. 제조부분에만 약 91만명이 종사한다. 차세대 자동차 개발경쟁에서 밀리면 일본경제의 미래도 없다는 우려가 일본 내에서 커지는 이유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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