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앙은행(Fed)이 다음달 21~22일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긴축 일정을 공식 발표한 뒤 11월부터 양적완화 축소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물가에 이어 고용지표까지 완연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어서다. 유동성의 힘으로 급등해온 뉴욕증시는 통화 당국의 긴축 움직임에도 역대 최고치 행진을 지속하고 있다.

조기 테이퍼링 공감대 커져

"美 테이퍼링, 연말 아닌 11월 시작될 것"
Fed 내 고위 인사들 사이에서 테이퍼링(채권 매입 축소) 조기 착수에 대한 공감대가 커지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일자리 지표가 두 달 연속 호조를 보인 상태에서 다음달 초 나올 8월 실업률마저 예상보다 개선될 경우 ‘11월 테이퍼링’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란 관측이다.

그동안 제롬 파월 의장 등 Fed 내 핵심 인사들은 “올해 말 또는 내년 초는 돼야 테이퍼링을 시작할 수 있다”는 의견을 보여 왔다. 하지만 장기 평균 2%의 물가상승률 및 최대 고용이란 목표치를 향해 ‘상당한 추가 진전’이 이뤄지고 있다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분석이다.

Fed 인사들의 인식 변화는 공개 발언에서 확인된다. 올해 FOMC에서 투표권을 행사하고 있는 찰스 에번스 시카고연방은행 총재는 지난주 “올해 안에 상당한 추가 진전을 목격할 것”이라고 말했고, 에릭 로젠그렌 보스턴연방은행 총재는 “9월 FOMC 전까지 테이퍼링 착수를 위한 고용 기준을 충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로젠그렌 등은 내년 중반 또는 이보다 빨리 자산 매입 프로그램을 모두 종료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Fed 내부에선 집값 급등 탓에 테이퍼링을 서둘러야 한다는 시각이 적지 않다. 매달 사들이는 채권 중엔 주택저당증권(MBS)이 400억달러씩 포함되기 때문이다. MBS 매입이 모기지 금리를 인위적으로 낮춰 주택 매수 심리를 자극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조기 테이퍼링이 실시되더라도 2013년과 같은 긴축 발작(테이퍼 탠트럼)이 발생할 가능성은 낮다는 게 WSJ의 설명이다. 당시보다 경제 성장 속도가 빠르지만 실업률은 낮다는 이유에서다.

현금 쌓아 놓은 글로벌 기업들

팬데믹 발생 직후였던 지난해 3월 23일 저점을 찍은 S&P500지수는 이날까지 100% 급등했다. 5거래일 연속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면서다. 이 지수가 두 배 치솟는 데 걸린 기간(1년5개월)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짧은 것으로 기록됐다.

S&P500지수는 올 들어 총 156거래일 중 31%에 해당하는 49일을 역대 최고치로 마감했다. 사흘마다 하루꼴로 신기록을 썼다는 얘기다. 경기 급랭에 대응하기 위해 Fed가 시장에 통화량을 대거 푼 덕분이란 게 월가의 분석이다.

기업들의 현금 보유액도 역대 최대치다. 무엇보다 탄탄한 실적이 뒷받침해주고 있어서다. S&P글로벌에 따르면 세계 기업들의 올 2분기 현금 및 단기 투자금은 총 6조8400억달러로 집계됐다. 팬데믹 이전이던 2019년 말(5조3200억달러)과 비교하면 28.6% 늘어난 수치다.

크루즈 선사인 카니발의 팬데믹 이전 현금은 20억~25억달러였지만 지금은 90억달러에 달한다. 유나이티드항공의 보유 현금도 2년 전보다 네 배 증가한 230억달러다. 이 회사의 현금성 자산은 올 들어서만 33억달러 늘어났다. 델타항공의 현금도 2년 전보다 약 다섯 배로 급증했다.

기업들의 경쟁적인 채권 발행도 현금 확대에 한몫한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정보업체 딜로직에 따르면 작년 미국과 유럽의 기업 채권(비금융사 기준) 발행액은 2조4000억달러로 역대 최대였다. 불황에 대비하려고 대규모 현금을 확보했지만 막상 쓸 일은 예년보다 많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뉴욕=조재길 특파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