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수지지' 국내 여론도 변화 조짐…미국 국제사회 리더십도 '흔들'
'4개월만에 아프간 함락' 바이든 역풍 맞나…동맹국들도 비판(종합)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아프가니스탄 철수를 결정한 것은 4개월 전이었다.

9·11 테러 20주년에 맞춰 아프간전에서 손을 떼겠다는 바이든 대통령의 발표에 대한 미국 내 여론은 긍정적이었다.

천문학적인 자원이 투입된 상황에서도 끝이 안 보이는 전쟁을 드디어 끝낼 수 있다는 데 대한 기대감과 함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극복 등 다른 현안들에 대한 여론의 관심이 더 컸기 때문이다.

미국 정치권의 반응도 우호적이었다.

야당인 공화당도 바이든 대통령의 철군 결정에 찬성 입장을 보였다.

아프간 철군 자체가 공화당 소속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첫 단추를 끼운 사안이라는 이유가 컸다.

앞서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해 2월 탈레반과 평화 합의를 체결했고, 미국과 동맹군을 조기 철군시키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그러나 바이든 대통령의 지난 4월 철군 결정 발표 후 아프간 정부가 당초 예상보다도 훨씬 빠르게 무너지면서 국내 여론에도 변화 조짐이 감지된다.

최근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는 아프간 상황을 1975년 베트남 사이공 함락과 비교하면서 바이든 행정부를 비판하기도 했다.

사이공 함락은 미국 입장에서는 역사상 최악의 굴욕으로 꼽히는 사건이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도 아프간 정부가 항복한 15일(현지시간) "이곳은 명백하게 사이공이 아니다"라고 강조한 것도 아프간 철군이 제2의 사이공 함락이라는 인식이 확산하는 것을 차단하려는 바이든 행정부의 인식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4개월만에 아프간 함락' 바이든 역풍 맞나…동맹국들도 비판(종합)
그러나 탈레반의 아프간 접수는 바이든 행정부에 뼈아픈 사건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일반적이다.

국내 여론뿐 아니라 국제사회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예견된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후 '미국의 귀환'을 기치로 내걸고 트럼프 행정부 시절 흔들렸던 국제사회에서의 리더십 재건을 선언했지만, 아프간 철수와 이후 상황은 오히려 미국의 리더십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이야기다.

중국이 최근 자국 국방부 대변인의 입을 빌려 아프간 미군 철군에 대해 "미국은 세계 최대의 골칫거리 제조자"라고 비판한 것도 미국의 리더십에 흠집을 내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장 마리 게노 컬럼비아대 교수는 최근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서방 국가들은 시리아와 아프간에서의 대실패 이후 자신들이 바라는 대로 세상을 통제할 수 없다고 느끼게 될 것"이라며 "서방 국가들이 외부 상황에 관심을 두지 않고, 냉소적이며 국수주의적으로 바뀔 것"이라고 분석했다.

'4개월만에 아프간 함락' 바이든 역풍 맞나…동맹국들도 비판(종합)
동맹국들 역시 미국의 외교 정책 신뢰성에 의문을 표할 수 있다고 워싱턴포스트(WP)는 보도했다.

WP는 특히 동맹국이 아프간 주둔군 철수와 관련, 자신들의 국가 안보 이익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중대한 정책 결정을 놓고 충분한 협의가 이뤄지지 않은 데 대해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면서 많은 이들이 앞으로 안보 문제에서 미국에 의존할 수 있을지 의문을 나타내고 있다고 전했다.

영국 하원 토비아스 엘우드(보수당) 국방위원회 위원장은 WP와 인터뷰에서 트럼프 행정부 시절 손상된 미국의 권위와 동맹 관계를 재건하겠다던 바이든 대통령의 외교 정책을 거론하면서 이번 사태에 대해 비판했다.

그는 "사람들은 이 거대한 첨단 기술의 힘이 개입한 지 20년 만에 패주한 사람들(탈레반)에게 나라를 되돌려 주는 것에 당황해하고 있다"면서 "이는 매우 아이러니하다.

로켓 추진 수류탄과 지뢰, AK소총으로 무장한 반군에게 우리(영국과 미국)가 패배하고 있는데 어떻게 미국이 돌아왔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고 비꼬았다.

테리사 메이 전 총리 시절 국제개발부 장관을 지낸 로리 스튜어트도 "미국의 군사적 능력만큼이나 민주주의와 자유를 수호하는 미국의 역할이 다시 위태로워졌다"면서 "세계에 영감을 주고, 등불이었던 서구 민주주의가 등을 돌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4개월만에 아프간 함락' 바이든 역풍 맞나…동맹국들도 비판(종합)
독일 역시 2015년 시리아 전쟁으로 100만 명 이상의 난민이 유럽으로 몰려들었던 것과 같은 아프간 난민 탈출 가능성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캐서린 클리버 애쉬브룩 독일 외교위원회 국장은 "바이든 행정부는 동맹국들과 투명하고, 공개적인 교류를 약속하며 취임했다"면서 "미국은 대서양 동맹국과의 관계가 중추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이는 립서비스에 그쳤고, 여전히 유럽 동맹국들이 미국의 우선순위를 따라야 한다고 믿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란이 공격할 경우 미군이 지원해 줄 것으로 기대해 온 미국의 아랍 동맹국들도 미국에 의존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에 직면해 있다고 WP는 전했다.

중동에서 가장 큰 미군 부대가 있는 아랍에미리트(UAE)의 안보 컨설턴트 이네그마의 책임자인 리아드 카와지는 "아프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 도처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동맹국으로서 미국의 신뢰성에 의문이 제기돼 왔다"면서 "우리는 러시아가 시리아에서 아사드 정권을 지키기 위해 싸는 것과 미국이 아프간에서 손을 떼면서 큰 혼란을 초래한 것을 목도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4개월만에 아프간 함락' 바이든 역풍 맞나…동맹국들도 비판(종합)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