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사진=로이터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사진=로이터연합뉴스
"석유 산업은 환경을 심각하게 오염시킨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재생에너지로 대체돼야 한다." (2020년 10월 조 바이든 당시 대선 후보)

"세계 경제 회복을 위해 중요한 시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원유 감산 완화는 충분하지 않다. OPEC+ 산유국들이 경제 회복에 더 많이 공헌해야 한다." (2021년 8월 11일 백악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인플레이션 관리를 위해 산유국들에 원유 증산을 주문하자 기후변화 대응 기조와 모순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달성하려면 탄소배출 저감이 급선무인데 정반대로 원유 증산을 촉구했다는 것이다. 최근 지구온난화 시계가 빨라지고 있다는 내용의 국제기구 보고서가 발표된 점도 비판의 목소리를 키우는 요인이다.

논란의 발언은 지난 11일 백악관 성명을 통해 발표됐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이날 "높은 유가는 경제 회복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며 "OPEC+ 산유국들이 경제 회복에 더 많이 공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가 상승에 따른 인플레이션 압력을 낮추기 위해 OPEC과 러시아 등 비(非)OPEC 주요 산유국으로 구성된 OPEC+에 원유 증산 압력을 넣은 것이다.


지난달 OPEC+는 하루 580만 배럴에 달하던 감산 규모를 줄여 매일 40만 배럴씩 증산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백악관은 유가 상승을 멈추려면 추가 증산이 필요하다고 봤다. 현재 국제 유가는 올해 초보다 30% 이상 뛰었다. 미국의 휘발유 소매가는 1갤런(3.78ℓ)당 3.18달러로 1년 만에 1달러 이상 급등했다.

그러나 원유 증산 주장은 바이든 행정부의 친환경 기조와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온다. 블룸버그 통신은 12일 "정치적 문제로 인해 행정부가 친환경 정책의 일부를 축소하도록 강요받는 것을 보여준다"고 꼬집었다. 내년 11월 중간 선거를 앞둔 바이든 대통령이 인플레이션에 민감한 표심을 관리하기 위해 탄소배출 저감 정책을 후퇴시켰다는 것이다.
유엔 산하 국제기구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지구온난화 보고서를 발표한 지난 9일, 미국 플로리다주 콘도 건물 근처 해변에서 파도가 치고 있다. 미래에 마이애미 데이드 카운티는 지구 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에 가장 취약한 장소로 꼽힌다./사진=AFP
유엔 산하 국제기구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지구온난화 보고서를 발표한 지난 9일, 미국 플로리다주 콘도 건물 근처 해변에서 파도가 치고 있다. 미래에 마이애미 데이드 카운티는 지구 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에 가장 취약한 장소로 꼽힌다./사진=AFP
유가 상승이 원유 증산 주장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원유 가격 상승을 계기로 오히려 원유 의존도를 줄이는 접근을 취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애덤 투제 컬럼비아대 교수는 가디언에 보낸 기고문에서 "유가가 오르면 부유층 소비자들에게 대형 SUV에서 전기차로 전환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주면 된다"고 했다. 또 "저소득층 미국인들을 돕기 위해 필요한 것은 원유 생산 촉진이 아니라 연료비가 가계에 너무 많은 부담을 주지 않도록 하기 위한 광범위한 지원책"이라고 강조했다.

지구온난화의 심각성을 외면했다는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더군다나 유엔 산하 국제기구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2040년까지 지구 온도가 산업화 이전(1850~1900) 대비 1.5℃ 상승할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한지도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았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지구 온도 1.5℃ 상승 시점이 3년 전 전망보다 10년 앞당겨졌다. 투제 교수는 "바이든 대통령이 기후 위기 해결에 정말로 진지하다면 그는 화석연료 사용을 끌어올리는 것이 아니라 자국의 지렛대를 사용해 이를 억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허세민 기자 se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