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상반기 미국 실리콘밸리의 기술 스타트업들이 역대 최대 규모의 투자금을 유치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스타트업 투자를 전문으로 하는 벤처캐피털(VC) 영역에 대형 펀드 운용사 등이 대거 뛰어들었다.

1일(현지시간) 미국의 테크 관련 조사·분석 회사인 피치북에 따르면 올 상반기 미국 내 스타트업 투자는 1500억달러(약 172조8000억원)를 넘어섰다. 이는 작년 한 해 투자액을 뛰어넘는 수준이다.

투자 건당 1억달러 이상이 투입된 펀딩 건수도 작년 4분기 96건에서 올해 1분기 187건, 2분기엔 198건으로 크게 늘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인 CB인사이트에 따르면 2016년에서 2019년 사이 1억달러 이상 펀딩 건수는 매달 평균 35건이었는데, 올해 들어서는 매달 126건으로 증가했다.

이처럼 스타트업 투자 건수와 규모가 급격히 늘어난 배경에는 ‘비전통 벤처투자자’로 분류되는 헤지펀드, 뮤추얼펀드, 연기금, 국부펀드 등이 자리잡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올해 스타트업 투자 건수의 42%가량을 비전통 벤처투자자가 집행했다”며 “투자 자금 규모로는 4분의 3에 해당하는 비중(약 1000억달러)을 차지했다”고 분석했다.

대형 펀드 운용사들은 원래 포트폴리오의 일부를 VC에 투자하도록 할당했었다. 하지만 2010년 이후 제로에 가까운 저금리 기조가 계속되면서 더 큰 수익을 올리기 위해 비상장 상태인 스타트업에 대한 직접 투자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VC는 이들의 직접 투자를 놓고 스타트업 투자 기술이 부족한 ‘관광 투자자’ 혹은 ‘덤 머니(dumb money)’로 매도했지만, 점점 주객전도의 성과를 보이고 있다고 WSJ는 전했다.

이는 비전통 벤처투자자의 경우 VC에 비해 이사회 및 경영 참여에 대한 요구가 덜해 스타트업 설립자들에게 한층 더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현재 스타트업 투자자 상위 10개사 중 절반은 피델리티인베스트먼트, 타이거글로벌매니지먼트 등 비전통 벤처투자자가 차지하고 있다. 비전통 벤처투자자들이 참여한 스타트업 펀딩 건수도 지난 10년 새 두 배 이상 급증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