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형은행들이 부유층을 대상으로 자산 담보대출을 확대하고 있다. 부실대출 위험 부담을 낮출 수 있어서다. 부자들은 낮은 이자에 세금 혜택까지 누릴 수 있어 수요가 늘고 있다는 분석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올해 2분기 JP모간체이스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씨티 모건스탠리 등 미국 4대 은행의 부유층 대상 대출이 6000억달러(약 691조원)를 넘었다고 25일 보도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7.5% 증가했다. 부유층 대출은 전체의 22.5%를 차지했는데 2017년 16.3%였던 것을 고려하면 4년 만에 큰 폭으로 늘었다.

주식 채권 등 부유층 자산을 담보로 한 대출은 위험 부담이 크지 않다. 이들의 신용등급이 높은 데다 파산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수년간 관련 시장이 커진 배경이다. 코로나19 대유행은 이런 흐름에 기름을 부었다. 미국 중앙은행(Fed)이 기준금리를 내리면서 대출 수요가 급증했다. 부유층 고객이 주식 등 유동자산을 담보로 2년 만기 대출을 받을 때 이자는 연 1.4%에 불과하다. 법무사무소 홀랜드앤드나이트의 자산부문 대표 크리스토퍼 보예트는 “금리가 낮기 때문에 부자들은 이를 값싼 돈으로 여긴다”고 했다.

은행들은 부유층 대출을 급격히 확대하고 있다. 최근 4년간 미 4대 은행은 부유층 고객 대출을 50% 늘렸다. 같은 기간 전체 대출은 9% 커지는 데 그쳤다. JP모간과 씨티는 수백만 명에 이르는 신용카드 고객보다 소수의 부유층 고객에게 더 많은 돈을 빌려주고 있다. JP모간은 10년 전 신용카드 고객 대출 규모가 부유층 고객의 다섯 배였지만 최근 들어 이 관계는 역전됐다.

부자들은 추가 주택마련 등에 대출금을 쓰고 있다. 인테리어와 가구, 예술품 구입에 쓰는 비용도 늘었다. 기업 대출보다 개인 대출이 쉽고 빠르다는 점을 이용해 자산을 담보로 대출받은 뒤 자신의 회사에 투자하기도 한다.

일각에선 부유층 대상 대출이 세금 회피 수단으로 악용된다고 지적한다. 캘리포니아대 교수팀은 올초 미국 억만장자들이 보유한 자산 4조2500억달러 중 2조7000억달러가 과세에서 누락됐다고 주장했다. 자산을 매각하면 세금을 내야 하지만 담보대출을 받으면 세금을 내지 않고도 현금을 확보할 수 있다. 부유세가 확대되면 부유층 대출 시장이 더 커질 것으로 전망하는 이유다. 다만 최근 불고 있는 부유층 대출 열풍은 세금보다는 저금리 영향이 더 클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진단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