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의 군소 후보로 출발해 정치 거물들 꺾고 대선 승리
"부자 나라에 가난한 국민 없어야"…농촌지역서 지지받아
시골 초등교사 출신 카스티요, 페루 첫 '서민 대통령'으로
페루 차기 대통령 당선인으로 확정된 페드로 카스티요(51)는 이번 대선에서 그리 주목받던 후보는 아니었다.

5년 사이 대통령이 3명이나 중도 하차하는 극심한 정치 혼란 이후 치러진 이번 선거엔 20명 넘는 후보가 우후죽순 출마했고 이 중 18명이 완주했다.

전직 대통령과 전직 대통령의 딸, 국가대표 축구선수, 경제학자 등 다양한 이력의 후보들 틈에서 시골 초등학교 교사인 카스티요는 그야말로 군소 후보였다.

지난해 대선 레이스에 합류한 직후 그의 여론조사 지지율은 2%였고, 출마 선언 직후의 신선함도 사라진 후 지난해 12월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은 0.2%에 불과했다.

이 같은 낮은 지지율은 선거 무렵까지도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지난 4월 11일 대선 1차 투표를 한 달 앞둔 시점에도 지지율은 5% 미만이었고, 대선 직전 치열한 경합을 벌이던 5∼6명의 선두 후보군에도 포함되지 않았다.

그러나 실제 투표에서 그는 18.9%의 득표율로 1위를 차지하며 모두를 놀라게 했고, 두 달 뒤 결선에서 게이코 후지모리(46) 민중권력당 대표를 간발의 차이로 꺾고 대권을 거머쥐었다.

기득권이나 엘리트 계층과는 거리가 먼 카스티요는 페루의 첫 '서민 대통령'으로 평가받는다.

AP통신은 그가 페루의 "첫 농민 대통령"이라고 말했고, AFP통신은 정치 평론가를 인용해 "첫 가난한 대통령"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챙 넓은 하얀 모자를 트레이드마크처럼 쓰고 다니는 카스티요는 1969년 페루 북부 카하마르카의 시골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문맹의 농부였다.

교육학을 전공한 후 1995년부터 고향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역시 교사인 릴리아 울시다 파레데스 나바로와 결혼해 세 자녀를 뒀다.

2002년 좌파 정당 후보로 소도시 시장직에 출마했다 낙선했고, 정당 지방조직에서 활동한 것이 정치 경력의 전부였다.

시골 초등교사 출신 카스티요, 페루 첫 '서민 대통령'으로
카스티요가 전국 무대에 이름을 알린 건 2017년 페루의 교사 파업이었다.

그는 전국 교사 수천 명이 처우 개선 등을 요구하며 80일 가까이 벌인 파업을 지휘했다.

무명에 가까웠던 그는 지난해 사회주의 정당 자유페루당의 후보로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에너지 산업 등에 대한 국가 통제 강화와 개헌 등을 내세웠지만 거의 레이스 내내 관심 밖의 후보였다.

그러나 기성 정치에 대한 유권자의 염증과 불만이 극에 달한 상태에서 치러진 이번 선거는 내내 예측 불가 상황이었고, 여러 명의 후보가 부상했다 가라앉는 과정에서 결국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은 카스티요였다.

특히 농촌과 서민계층에서 큰 지지를 받았다.

마르크스주의 정당 후보 카스티요의 선전은 대선 전후 페루 금융시장에 큰 충격을 줬다.

남미 다른 좌파 정권에서처럼 산업 국유화나 환율·가격 통제 등이 등장할 것이라는 우려 속에 주가와 통화가치가 급락하기도 했다.

카스티요는 시장의 불안을 달래기 위해 "사유재산을 존중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히고 어조도 더 온건하게 바꾸었지만, 큰 틀에서 경제 정책 방향의 변화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그는 1년 내 일자리 100만 개 창출, 인프라 투자를 통한 경제 활성화 등과 더불어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한 수입 규제 등도 내세웠다.

또 "부자 나라에 가난한 국민은 없어야 한다"며 자원개발 등을 통해 쌓은 부가 공평하게 배분되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사회 이슈에서는 보수적인 입장이다.

낙태와 동성결혼 합법화에 반대한다고 분명히 밝혔고, 사형제도 부활도 시사했다.

페루 내에서 범죄를 일으킨 미등록 외국인을 72시간 이내에 추방하겠다고 말해 논란을 불러왔다.

'서민의 대표' 이미지를 강조해온 그는 당선 후 대통령 급여를 포기하고 교사 수입으로 계속 생활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