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인터넷에서 어떤 콘텐츠를 볼지에 대한 결정권을 쥐고 있는 핵심 인물이다.”

영국 BBC는 미국 인터넷 커뮤니티 플랫폼 레딧을 창업한 스티브 허프먼 최고경영자(CEO)를 이렇게 평가했다. 허프먼의 영향력을 잭 도시 트위터 CEO,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와 동등한 수준으로 본 것이다. 허프먼이 2005년 창업한 레딧은 올해 초 ‘개미(개인투자자)’와 공매도 기관투자가 간 전쟁의 중심에 서며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레딧의 기업가치는 지난 2월 60억달러(약 6조8400억원)로 인정받았다.
8세 때부터 PC 만지던 코딩 덕후…美 여론 이끄는 커뮤니티 만들어

룸메이트와 창업한 레딧

허프먼은 1983년 미국 버지니아주에서 태어났다. 8세 때부터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관심을 보였고 버지니아대에 진학해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다. 버지니아대에 입학한 첫날 허프먼은 기숙사 룸메이트로 알렉시스 오해니언을 만났다. 비디오게임과 컴퓨터 등 취미가 비슷했던 두 사람은 금방 가까워졌다.

허프먼은 포장음식 주문 앱 사업을 구상했고 오해니언과 함께 벤처투자자 폴 그레이엄을 만났다. 이 발상은 실제 사업으로까지는 이어지지 못했지만 대신 그레이엄이 두 사람에게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됐다. 그레이엄의 독려 속에 허프먼과 오해니언은 인터넷 커뮤니티 사업의 틀을 짰다. 이용자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글이나 링크를 첫 페이지에 노출시켜 이용자들의 관심을 그대로 반영하는 커뮤니티를 만들겠다는 구상이었다. 이들의 생각을 들은 그레이엄은 “웹의 첫 페이지(the front page of the web)를 만드는 사업”이라며 적극 지원했다.

허프먼과 오해니언은 대학 4학년 때 그레이엄의 액셀러레이터(스타트업 투자·지원회사) Y콤비네이터로부터 1만2000달러를 투자받았다. 몇 주간의 개발 기간을 거쳐 2005년 레딧을 완성했다. 그들은 ‘읽다(read)’라는 단어가 들어갔으면서도 아직 쓰이지 않은 도메인을 찾아내 레딧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었다.

두 사람은 레딧 창업 이듬해인 2006년 미디어 기업 컨데나스트로부터 인수 제안을 받아 수락했다. 인수 가격은 비공개였지만 당시 업계에서는 2000만달러(약 230억원) 수준이라는 얘기가 돌았다.

위기 맞은 레딧의 구원투수로 복귀

회사 매각으로 20대 중반에 백만장자가 된 허프먼은 2009년까지 레딧에서 일했다. 레딧을 떠난 뒤인 2010년엔 여행정보 앱 기업을 창업하기도 했다.

허프먼의 부재에도 레딧은 성장을 이어갔다. 편집자가 아니라 이용자가 메인 페이지의 콘텐츠를 결정한다는 점에 매력을 느낀 사람들이 꾸준히 유입됐기 때문이다. 많은 이용자가 업(up) 투표를 한 콘텐츠는 레딧의 메인 페이지에 노출된다. 레딧은 모든 인터넷 ‘밈(온라인에서 유행을 타고 전파되는 콘텐츠)’의 근원지로 불렸다. 버락 오바마 전 행정부가 추진했던 지식재산권 보호법안(PIPA)과 온라인 저작권 침해 금지법안(SOPA)이 인터넷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반발의 중심지 중 한 곳이 되기도 했다. 레딧은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커뮤니티 플랫폼으로 입지를 굳혔다.

하지만 급성장에 따른 문제점도 불거지기 시작했다. 2014년 레딧에서 미국 여성 연예인들의 알몸 사진 등 사생활 사진이 유포됐다. 다음해엔 레딧 경영진과 이용자 사이에 갈등이 불거졌다. 레딧의 수십만 개 커뮤니티(서브레딧)의 자율적 운영에 경영진이 개입해 자유를 침해했다는 게 이용자들의 주장이었다. 인기 서브레딧들이 자진 폐쇄하며 항의하자 결국 엘런 파오 당시 CEO가 사임했다. 위기를 맞은 레딧은 창업자인 허프먼을 2015년 CEO로 다시 불러들였다.

게임스톱 사건 후 60억달러 기업가치 평가

6년 만에 레딧에 복귀한 허프먼에게는 여러 과제가 산적해 있었다. 전임 CEO의 퇴진까지 초래한 콘텐츠 정책을 개선하는 게 최우선 과제였다. CEO 취임 직후 허프먼은 성적 행위, 불법 행위 등이 담긴 콘텐츠의 레딧 게시를 제한하겠다고 발표했다. 다소 시대에 뒤떨어진 느낌을 줬던 사이트 디자인 개편에도 착수했다. 이용자 수 등 빠르게 성장하는 외형에 비해 뒤떨어지는 수익성을 광고사업으로 개선하는 일도 허프먼의 숙제였다. 2019년 진행한 투자 유치에서는 30억달러의 기업가치를 인정받는 데 성공했다. 지난해 말에는 동영상 앱 덥스매시를 인수했다.

올초 레딧 이용자의 저력이 폭발하는 대형 사건이 벌어졌다. 서브레딧 중 하나인 월스트리트베츠에서 개인들이 미 증시 상장사 게임스톱 주식을 매수하자고 결집했다. 공매도로 수익을 올리는 헤지펀드 등 기관투자가에 개인들이 대항하자는 주장이 힘을 얻으며 월스트리트 역사상 유례없는 일이 일어났다. 개인 매수세가 몰려 게임스톱 주가가 급등하자 게임스톱에 공매도 투자한 헤지펀드는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다윗(개인)과 골리앗(기관투자가)의 싸움에 비견된 이번 사건을 두고 허프먼은 “공동체의 힘”이라고 평가했다. 물론 결국은 개인의 투기로 변질됐다는 비판 등 이번 사건을 마냥 긍정적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레딧의 잠재력을 보여주기에는 충분한 계기가 됐다는 반응이 많다. 지난 1월에만 레딧 앱의 다운로드 건수는 전달보다 43% 늘어난 660만 건을 기록했다.

레딧은 지난 2월 60억달러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으며 투자금 2억5000만달러를 끌어들였다. 게임스톱 사건을 계기로 이용자가 급증하면서 광고 수익이 늘어난 점이 투자자들의 주목을 끌었다. 레딧은 지난 3월 창사 이후 처음으로 최고재무책임자(CFO)를 영입하며 기업공개(IPO)를 준비하고 있다.

여전히 허프먼이 해결할 문제도 남아 있다. 다른 대형 소셜미디어는 문제의 소지가 있는 콘텐츠를 걸러내기 위해 막대한 예산을 들여 알고리즘을 도입하고 있다. 반면 레딧은 보수를 받지 않는 수만 명의 자원봉사자를 활용한다. 소셜미디어에서 유통되는 콘텐츠에 대한 책임과 이용자들이 원하는 자유 보장 사이에서 허프먼이 어떤 경영 판단을 하게 될지 주목된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