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선 행정부와 의회를 막론하고 빅테크에 대한 규제론이 득세하고 있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대선 때부터 빅테크들의 독점적 지위를 손보겠다고 약속한 데 이어 최근 규제를 한층 강화하고 있다. 의회에선 빅테크들을 쪼개야 한다는 법안까지 나왔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10일 경쟁 촉진과 독점적 관행 단속을 지시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그러면서 “경쟁 없는 자본주의는 자본주의가 아니라 착취”라며 “지난 수십 년간 경쟁은 줄이고 집중을 허용한 결과 미국 경제가 발목을 잡혔다”고 했다. 빅테크를 타깃으로 ‘반독점 전쟁’을 선포한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서명한 행정명령엔 ‘킬러 인수’ 제한이 담겼다. 빅테크들이 잠재적 경쟁자를 인수하는 걸 제한하도록 연방거래위원회(FTC)에 지시했다. 과거 정부에서 이뤄진 인수합병(M&A)까지 다시 들여다보도록 했다.

소비자가 구매한 제품을 원하는 곳에 맡겨 고칠 수 있는 ‘수리권’과 직원들의 경쟁회사 이직 제한을 완화하는 방안도 행정명령에 담겼다. 모두 빅테크의 영향력을 줄이고 경쟁을 촉진하기 위한 조치다. 애플 등 일부 기술기업은 소비자가 자사 제품을 수리할 때 공식 수리점만 이용하도록 하고, 일반 수리업체를 이용하면 보증 수리를 해주지 않거나 정품 부품을 제공하지 않았다. 수리권은 이런 관행에 제동을 거는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한국의 공정거래위원회에 해당하는 FTC 수장에 ‘아마존 킬러’로 불리는 리나 칸 컬럼비아대 법대 교수를 임명해 반독점 정책 강화 의지를 분명히 하기도 했다. 또 빅테크들의 영향력을 제한하기 위해 백악관 경쟁위원회를 신설하기로 했다.

의회에서도 빅테크 규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미 하원이 지난달 말 통과시킨 ‘플랫폼 독점 종식 법안’이 대표적이다. 이 법안은 플랫폼 사업자가 다른 사업을 소유·통제하는 것을 막는 내용을 담고 있다. 법안이 상·하원을 통과해 대통령 서명까지 마치면 빅테크는 과거 스탠더드오일처럼 여러 기업으로 쪼개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하원 반독점소위원회는 지난해까지 16개월에 걸쳐 빅테크를 조사하기도 했다.

각 주 역시 빅테크를 겨냥하고 있다. 유타주 뉴욕주 등 36개 주와 워싱턴DC는 지난 7일 “앱스토어(플레이스토어)에서 앱 개발자들을 상대로 부당한 권한을 남용했다”며 반독점법 위반 혐의로 구글을 제소했다.

이 같은 조치는 플랫폼을 장악한 빅테크들의 영향력 확대를 견제해야 한다는 미국인들의 여론을 반영한 측면도 있다. 미국 여론조사업체 퓨리서치센터가 미국 성인 470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빅테크를 지금보다 더 규제해야 한다’는 응답이 47%에 달한 데 비해 ‘지금보다 덜 규제해야 한다’는 대답은 11%에 그쳤다. ‘지금 수준으로 규제해야 한다’는 의견은 39%였다.

워싱턴=주용석 특파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