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위기 이후 세계 각국의 중앙은행 역할론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중앙은행 본연의 역할인 물가 안정뿐 아니라 불평등 해소와 경제성장 등으로 담당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블룸버그통신은 8일(현지시간) “각국 중앙은행이 수십 년 만에 각자 역할에 대해 전면 재검토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세계 중앙은행이 돈 풀기 통화정책으로 자국 정부의 재정정책과 긴밀히 공조한 끝에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하는 데 성공하자, 코로나19 이후 역할론을 고심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지난해 코로나19 이후 미 중앙은행(Fed), 유럽중앙은행(ECB) 등은 대규모 채권 매입을 통해 재정당국이 차입비용을 증가시키지 않고도 비상지출을 늘릴 수 있게 해줬다.

블룸버그는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으로 인한 경제위기가 회복되면서 중앙은행은 기후변화, 불평등 억제 같은 사회적 목표를 통합하기 위해 경제구조를 형성하고 넓히는 데 그들의 확장된 역할을 유지하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같은 새로운 흐름은 최근 몇 년간 지속된 낮은 물가 상승률 덕분에 가능해졌다.

글로벌 투자은행 도이체방크 자료에 따르면 선진국 중앙은행이 연설에서 불평등을 언급한 비율이 2018년 5.42%에서 2019년 5.78%, 2020년 7.34%, 올해 7.96%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플레이션에 초점을 맞추던 예전과는 다른 흐름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도이체방크의 한 애널리스트는 “최근 몇 년간 중앙은행들이 정부 재정정책과 인종, 젠더 이슈, 기후변화, 불평등 등 다른 다양한 논의에 참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라 바인더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오늘날 상황은 중앙은행이 통화 긴축으로 물가를 잡아주기 원했던 1980년대와는 다르다”고 진단했다. 이어 “금융위기, 코로나19 위기를 겪은 데다 좀 더 적극적인 중앙은행을 원하는 정치적 수요와 맞물리면서 중앙은행이 위기 극복과 경제성장 회복에 일조해야 한다는 그들의 본래 역할로 돌아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유럽중앙은행은 8일 미국과 일본 중앙은행의 기조에 발맞춰 물가 목표치를 ‘2% 바로 밑’에서 ‘2%’로 상향 조정했다. 물가 목표를 높여 더 오랫동안 완화적 통화정책을 유지하겠다는 의미다. 또 일본 중앙은행은 지난달 기후변화 대응 자금을 공급하겠다고 밝히는 등 세계 중앙은행의 역할이 다양해지고 있다. 폴 터커 전 영국 중앙은행 부총재는 “오늘날 우리는 중앙은행 체계에서 보기 드문 접점에 도달해 있다”고 말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