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대통령 선거에서 강경 보수 성향의 성직자 출신 후보가 당선된 게 오히려 이란과 미국 간 진행 중인 핵 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 복원 협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20일 뉴욕타임스(NYT) 등은 "이란과 JCPOA 복원 협상을 추진하고 있는 조 바이든 미 정부에는 이란의 강경 보수 성향 대통령 당선이 오히려 짧은 천재일우가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전날 이란 내무부는 세예드 에브라힘 라이시 후보가 대선에서 최고 득표율로 당선됐다고 발표했다. 라이시는 미국으로부터 제재받은 이력이 있는 반미 성향 인사인 만큼 일각에서는 중동의 지정학적 긴장도가 높아질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NYT는 "라이시가 오는 8월 취임하기 전까지 미국과 이란 현 정부가 JCPOA 복원 협상을 끝내기 위해 사활을 걸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산 로하니 대통령이 이끌고 있는 현 이란 정부는 미국 주도의 대이란 제재를 끝내기 위해 JCPOA 복원 협상에 적극적이다. 이란과 미국은 지난 4월부터 오스트리아 빈에서 유럽 국가의 중재로 JCPOA 복원 협상을 진행해왔다. 다만 20일 현재 정치적 결정이 필요한 세부 쟁점이 있다는 이유로 일시 중단됐다.

라이시는 반미주의 성향이 강하지만, 대통령 선거 운동 기간 내내 현 정부의 JCPOA 복원 약속을 존중하겠다고 공언해왔다. 특히 현재 이란의 실권을 쥐고 있는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도 JCPOA 복원에 동의하고 있는 만큼 하메네이의 최측근이자 유력 후계자 후보인 라이시가 하메네이의 입장을 쉽게 뒤집을 순 없을 것이란 전망이다.

이날 알자지라 역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이 "우리 임기가 끝나기 전에 합의에 이를 수 있다"고 한 발언을 토대로 "라이시가 임기를 시작하기 전에 미국과 이란 간 JCPOA 복원 합의가 가능할 수 있다"고 점쳤다.

NYT는 "로하니 정부 임기 내에 JCPOA 복원을 끝낸다는 것은 서방의 대이란 제재 완화가 이란의 경제 회복에 별다른 효력을 발휘하지 못할 경우 서방국가에 무릎을 꿇었다는 것에 대한 이란 내부의 분노와 그 책임을 온건파 정부가 떠맡게 될 것이라는 점을 의미한다"고 예측했다. 이어 "반면 이 협상이 효과적이라면 경제 성장의 공로는 라이시 대통령 휘하의 새 보수정권에 돌아가 '미국에 맞서 나라를 되찾으려면 강경 민족주의 정부가 필요하다'는 라이시의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즉 JCPOA 복원은 라이시 등 강경보수파 입장에서는 잃을 게 없는 게임판인 셈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로하니 정부가 핵 합의 복원을 타결하고, 그 과실을 라이시 정부에서 거둘 수 있다면 복원 협상은 더욱 쉽게 진전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번 협상에 정통한 존스홉킨스대 국제대학원 교수 발리 나스르는 "이란 입장에서는 지금이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던 순간에 비교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 공화당 소속이자 반(反)공산주의자인 닉슨 전 대통령이 오히려 공산국가인 중국과의 수교 등 데탕트를 이끌어낸 것을 빗댄 표현이다. 나스르 교수는 "보수파가 아닌 이들이 바이든 정부와 협상을 타결한다면, 그들은 내부적으로 분열하고 견뎌낼 수 없을 것이다"고 전망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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