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유럽연합(EU)이 보잉·에어버스 항공기 보조금 문제를 두고 17년간 벌여온 무역분쟁을 끝내기 위한 절차에 들어갔다. 양측은 상대에 대한 보복관세 부과를 5년간 더 유예하기로 합의하면서 사실상 분쟁을 마무리짓기로 했다.

캐서린 타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15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기자들과 만나 “미국과 EU가 관세 부과를 유예하는 데 합의했다”며 “관세는 합의 조건이 유지되는 한 유예 상태로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양측은 올해 3월 상대에 대한 관세 부과를 4개월간 유예하기로 합의했다. 만료 시점인 다음달 11일부터 5년간 더 관세 부과를 미루기로 한 것이다. EU 측은 5년이란 시간은 분쟁을 해결하는 데 충분할 것이라고 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이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EU-미국 정상회의’를 하기에 앞서 “이번 회담은 항공기 분쟁에 관한 돌파구와 함께 시작됐다”며 “17년 분쟁 끝에 소송에서 협력으로 이동한다는 점에서 우리 관계에 새로운 장을 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보잉과 에어버스 보조금 분쟁은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미국은 프랑스·독일·스페인·영국 정부가 에어버스에 불법 보조금을 줬다고 주장하며 1992년 EU와 체결한 항공기 보조금 제한 합의를 파기했다. 이후 EU를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했다. 이에 EU는 미국이 보잉에 불공정한 연구개발(R&D) 지원과 보조금 성격의 세제 혜택을 줬다며 맞소송을 제기했다.

양측의 싸움은 관세 전쟁으로 옮아갔다. 미국은 2019년 에어버스 항공기와 EU산 와인, 위스키 등 75억달러(약 8조4000억원) 규모 제품에 10~25% 관세를 매겼다. EU가 에어버스에 불법 보조금을 지급했기 때문에 미국이 관세를 부과할 권리가 있다는 WTO 판정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이에 대응해 EU도 지난해 10월 보잉 항공기 등 미국산 제품 40억달러어치에 보복 관세를 매기는 등 양측의 신경전이 이어졌다.

미국과 EU는 3월에 보복 관세 부과를 4개월간 미루기로 합의하면서 화해 제스처를 보였다. 보조금을 무기로 항공산업을 키우고 있는 중국에 공동 대응하려는 움직임이란 분석이 나왔다. 타이 대표는 “우리는 가장 가까운 동맹 가운데 하나와 싸우는 대신 마침내 공동의 위협에 맞서 협력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과 EU는 오는 12월 1일 이전에 철강, 알루미늄과 관련한 관세를 없애기 위한 논의도 이어나갈 예정이다.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이날 “미국과 EU 모두 철강, 알루미늄과 관련한 양측의 무역 분쟁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우리가 해결책을 찾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했다.

지난해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행정부는 국가 안보를 명분으로 내세워 EU를 포함해 외국산 철강 제품과 알루미늄 제품에 대해 각각 25%와 10% 관세를 부과했다.

안정락 기자 jran@hankyung.com